20일 저녁 어느 TV 9시 뉴스였다. 경남 지역 수해공장을 보도하던 기자가 “이 비닐하우스는 수확을 하지 못할 정도로 초토화(焦土化)되었지만…”이라고 했다. 11일 아침 어느 TV 7시 뉴스에서도 “남부지방이 초토화됐다”고 했고 12일 오후 9시 뉴스에서도 어느 기자가 “낙동강 유역이 완전 초토화된 유령 도시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홍수 피해 상황을 가리켜 ‘초토화’라고 하다니 기가 막힐 일이 아닐 수 없다. ‘초토화’란폭격을 맞거나 화재를 당해 땅이 새카맣게 그을린 상태, 재만 남은 지경이다. 홍수를 당한 것을 가리켜 ‘불에 탔다’고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물과 불, 물불을 가리지 못하는 착각이 아닌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한마디로 한자 감각이 무뎌졌거나 희박해진탓이다. ‘초점’이라고 할 때의 그 ‘탈 초(焦)’ 자가 머리에 잡히지 않는 탓이고 이는 한자 자장(磁場)으로부터 이반된 교육 때문이다.
TV 드라마 언어도 문제가 많다. 얼마 전 끝난 ‘여인천하’에서는 임금의 첩인 후궁이 중전을 대하면서, 중전은 대비를 보면서 시종일관 자신을‘신첩(臣妾)’이라고 칭하는 것이었다. ‘신첩’이란 첩이든 본처든 임금의 부인이 오직 임금한테만 할 수 있는 말이다. 글자 그대로 임금의 아내이자 신하라는 뜻이다. ‘소자(小子)’는 부모한테만, ‘소손(小孫)’은 조부모한테만 쓸 수 있는 말인 경우와 같다. 그런데도 후궁이 중전한테 ‘신첩, 신첩’ 한다면 여자 임금이 여자 첩을 거느렸다는 얘기가 되고 마는 것이다. 오직 지어미가 지아비한테만 할 수 있는 말인 ‘소첩(小妾)’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드라마의 아내들은 외간 남자 아무나 보고“소첩이 한 잔 …” 하는 것이다. 역시 한자 어휘 감각이 무딘 탓이다.
‘허준’이라는 드라마 또한 인기가 드높았다. 한데 스승 유의태가 걸린 위암을 시종일관 ‘반위(反胃)’라고 했다. ‘반위’가 아니고 ‘번위’다. ‘反’자는 반대한다고 할 때는 ‘반’이지만 ‘뒤칠 번’ ‘뒤집어질 번’자이기도 하다. 번역(飜譯)이라고 할 때의 ‘飜’과 통하는 글자다. 즉 위가 뒤집힐 정도로 메스꺼워 토하고 아픈 증세가 ‘번위’로 국어사전에도 있는 말이다.
그럼 한글은 제대로 쓰고 있는가. TV의 논어 강좌로 스타가 된 어느 학자는 강좌 내내 ‘후학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글을 ‘가르치다’와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다’도 혼동한대서야 어찌 손색없는 대학자라고할 수 있겠는가.
이런 잘못된 방송 언어가 왜 즉석에서 브레이크가 걸려 고쳐지지 않는지 답답한 일이다. 방송 언어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는 누구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