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년간의 분단으로 이질화된 남북한 언어를 하나로 묶는 공통사전 만들기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사전의 이름은 ‘겨레말큰사전’. 5일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이사장 고은) 주최로 열리는 첫번째 국내학술대회를 계기로 겨레말큰사전 편찬 진행상황을 점검해 본다.
남과 북은 2012년까지 30만여 어휘를 담은 남북한 단일사전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사전에 올릴 단어와 어문규범 통일 등을 본격 논의하기 시작했다.
남북은 지난해 2월부터 올 5월말까지 서울·평양·금강산 등을 오가며 6차례 공식 만남을 가졌다. 지난해 말 세부 편찬요강을 확정한 데 이어 5월 금강산 만남에서는 ‘ㄱ’ 부분 올림말 선별과 사이시옷 등 어문규범 통일을 위한 양측의 입장을 밝혔다.
- 2012년 목표 어문규범 구체논의 -
공동편찬회 남측편찬실의 한용운 편찬부실장은 “‘ㄱ’ 부분 올림말 선정 지침 논의란 ‘공업 단지’로 띄어 쓸 것인지 ‘공업단지’로 붙여 쓸 것인지 등 매우 구체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5월 만남에서 남과 북은 각자의 사전에 올라있는 ‘ㄱ’ 부분 어휘들에 대해 ‘반영’ ‘삭제’ ‘검토’라는 범주로 분류해 엑셀 파일로 교환했다.
파일을 겹쳐본 결과 둘다 ‘반영’으로 일치하는 단어는 사전에 올리고, 양측 간 이견이 있는 단어는 논의를 해야 했다. 양측이 제시한 ‘ㄱ’ 부분 올림말은 6만9천여개에 달했다.
남북은 금강산 만남에서 현장조사 등을 통해 수집한 방언과 고유어 등 새말(새 어휘) 500개도 교환했다. 방언 수집을 위한 현장조사는 이번 사전 편찬의 가장 큰 특징이다.
남측편찬실에 따르면 남쪽은 8~10군데에 대한 방언 조사를 끝냈고, 북쪽도 5군데 조사를 끝내 CD로 자료를 교환했다.
남과 북에서는 현재 각각 ‘표준국어대사전’(50만9천여 어휘 수록)과 ‘조선말대사전’(33만여개)이 주로 쓰이고 있지만 이 사전들은 현장조사에 바탕하고 있지는 않다.
겨레말큰사전은 두 사전에서 공통적인 것과 다른 것을 포함, 모두 20만개를 뽑고 이들 사전에 올라있지 않은 새말도 10만개 추가할 계획이다. 20세기 이후의 문학작품 등 문헌조사로 6만개, 현장조사로 4만개를 수집하게 된다. 대신 기존 두 사전에 수록된 어려운 한자어, 외래어 등은 제외된다.
이를테면 ‘미혼남’ 같은 단어와 ‘솔찬히’ 같은 방언은 실생활에서 자주 쓰이지만 양측 사전 모두에 올라있지 않아 겨레말큰사전의 올림말이 될 수 있다.
어휘 선정과 함께 진행 중인 어문규범 통일 논의는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어문규범 가운데 띄어쓰기는 거의 합의가 된 상태지만, 사이시옷과 두음법칙은 양측간 견해차가 현격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남한에서는 사이시옷을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북측은 ‘샛별’ 같은 단어 외에는 사이시옷을 거의 쓰지 않는다. 남한은 두음법칙을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북측은 ‘로동’과 같이 두음법칙을 쓰지 않는다.
남북은 어문규범위원을 별도로 선정해 이 작업을 하고 있지만 두음법칙 논의가 가로막히면 ‘ㄹ’ 부분 올림말부터는 논의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 故 문익환목사 15년전 제안 -
고 문익환 목사가 김일성 주석에게 ‘통일국어대사전’ 편찬을 제안한 지 15년이 지나서야 시작된 겨레말큰사전 만들기는 아직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5일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열리는 ‘겨레말큰사전 편찬 방향과 역사적 과제’ 학술대회에 참석할 국어학 전문가들의 고언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건 안될 일이다. 정치적인 타협이나 핏줄 당김이 학문을 앞지르게 하면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뜯어다 붙이고 티가 섞인 일그러진 물건밖에 나오지 않는다.” 김정수 한양대 교수(국문학)가 겨레말큰사전의 편찬요강을 보고 느낀 생각이다. 김교수는 “올림말 선정과 배열에 앞서 남북의 말글(어문) 규범 통일이라는 난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영신 국어운동본부 대표도 “남북한 학자들이 모이면 불가피하게 어떤 규칙은 남한이 양보하고, 어떤 규칙은 북한이 양보하는 식의 합의가 진행될 것”이라며 “그러나 몇몇 학자들간의 절충만으로 일상에서의 언어 규칙에 충격을 주는 결정을 하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통일국어사전에서 남북한 언어를 서로 대비할 수 있는 사전 수준으로 낮추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