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글 바로쓰기’를 펴낸 우리말 운동가 이오덕 선생(2003년 작고)의 삶과 학문을 다룬 책이 출간됐다.
일제 말부터 교사 생활을 시작한 이오덕은 일제 군국주의를 위한 식민지 노예교육과 미국의 경험주의 교육을 벗지 못하는 한국의 교육 현장을 끊임없이 질타했다. 그는 우리 겨레와 겨레의 희망인 어린이를 지키는 교육으로 ‘삶을 가꾸는 교육’, 즉 ‘참교육’이라고 했다.
참교육은 1980년대를 지나면서 교육민주화와 교육개혁을 지향하는 용어로 부각된다.
권력자들에게 이러한 초등학교 교사의 활동이 그리 탐탁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이오덕이 잘못된 교육으로 지목한 것 중에는 군사정권의 잘못된 교육방식도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말을 제대로 쓰자는 그의 주장은 붉은색을 띤 것처럼 보였다.
영남대 염무웅 교수는 지난 1975년 이오덕 선생에 집에 들려 월북작가 오장환이 번역한 에세느 시집과 이용학 시집을 빌린 후 복사했다. 염 교수는 복사한 시집을 신경림과 백낙청 교수에 돌렸다가 중앙정보부에 의해 발각됐다. 중앙정보부 문학담당은 이 책을 압수했고, 출처를 조사하다가 책 주인이 이오덕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오덕도 중정에 끌려가 상당한 고초를 겪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중정에서의 고초보다 압수된 문학 서적과 어린이 교육 서적을 아깝게 여겼다고 한다.
군사정권 시절 그의 고초는 끝이 없었다. 1985년에는 공안기관이 앞장서 이오덕을 불순세력으로 지목했다. 그가 펴낸 어린이 소설 ‘개구리 울던 마을’이 좌경의식화 교육 수단으로 쓰인다는 이유에서다. 이오덕을 비난하는 기사가 연이어 그치지 않았다.
이오덕의 회갑모임도 불순한 모임이었다. 경찰의 감시와 참가자들에 대한 회유가 이어졌다. 결국 맏아들 정우씨를 비롯한 지인들은 그의 회갑모임에 참석할 수 없었다. 교육민주화 운동을 벌인다는 이유로 학교에는 교육청이 수시로 감사를 나왔다.
저자인 이주영 사단법인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사무총장은 새내기 교사 시절 이오덕 선생을 만난 인연으로 이 책을 펴내게 됐다. 저자는 이오덕 선생의 영향을 받아 글쓰기 교육 운동을 펼치고 어린이도서연구회를 세우기도 했다. 저자는 “이오덕은 국어교육 모든 영역에 걸쳐 영향을 주었고, 그 영향은 현재진행형”이라고 평가한다. 그의 사상과 교육방식을 따르는 후배 교사들이 활동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