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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른 이 154161131 명
깁고 더함 2007/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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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이 아니라 `풀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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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1일입니다. 그날 새 소식 가운데 하나는 정부에서 `빛이름`을 바꾼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동안 안 좋게 쓰던 빛이름을 하나하나 바꾸는가 싶어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소식을 듣는 내내 씁쓸함이 가시지 않았어요. 여러 분야 전문가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빛이름을 쓰기로 했다는데,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거든요. 하나하나 꼼꼼히 짚어 보겠습니다.
(1) 일본식 색이름 체계를 40년만에 대폭 개편키로 하고 색이름 KS규격 개정안을 마련, 올 연말부터 시행키로 했다고.
=> 사실 그동안 우리가 써온 말은 `색명(色名)`입니다. 이 말을 `색이름`으로 바꾸었으니 반가웠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어차피 바꿀 이름이라면 조금 더 바꾸면 좋겠어요. `색(色)이름`보다는 `빛이름`이 더 낫지 않겠어요?
`색(色)`이란 한자는 `빛 색(色)`입니다. `흰색-검은색-빨간색-파란색-하늘색-물색`처럼 쓰기도 하지만 `흰빛-검은빛-빨간빛-파란빛-하늘빛-물빛`으로 쓸 때가 훨씬 나아요.
(2) 한자어이며, 색수식어로 부적절한 녹색은 순 우리말인 초록으로 바꾸고 흰색을 하양으로 변경, `흰`은 수식어로만 사용키로 했다.
=> 먼저 낱말책을 살피겠습니다. `녹색`과 `초록`이 어떤 뜻을 지닌 말인지 살펴보아야겠어요.
-풀빛 : 빛깔과 같이 노란빛을 조금 띤 녹색
-풀색 = 녹색
-푸른빛 : 맑은 가을 하늘이나 깊은 바다, 풀의 빛깔과 같이 맑고 뚜렷한 빛
-녹색(綠色) : 파란색과 노란색의 중간 색. 또는 그 물감
초록(草綠) : 풀의 빛깔과 같이 푸른빛을 약간 띤 녹색. 또는 그 물감
`순 우리말`이 `초록`이라고 했지요? 하지만 `초록`은 `순 우리말`도 아니지만 `순 우리말`이 될 수 없어요. "풀 빛깔과 같은 푸른빛을 띠는 빛"은 `풀빛`입니다. "풀 빛깔을 띠"니 자연스레 `풀빛`이거든요. 그런데 `초록`이 `순 우리말`이라니요?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예요. `녹색`도 쓰지 않아야 좋을 말이지만 `초록` 또한 쓰지 않아야 좋은 말입니다.
(3) 또 명도, 채도와 관련된 `해맑은`, `짙은`, `칙칙한` 등 수식 형용사는 각각 `선명한`, `진한`, `탁한`으로 바뀌며 사용빈도가 높은 `흐린`이란 표현을 수식 형용사에 추가했다.
=> 가장 답답한 `바뀜안`이었습니다. `해맑은-짙은-칙칙한`처럼 좋은 토박이말을 왜 버리나요? `선명(鮮明)-진(津)-탁(濁)`이라는 한자를 왜 써야 하나요? `녹색`이 `일본투 빛이름`이기에 바꿔야 한다면 `선명-진-탁`이라는 말 또한 쓰지 말아야 합니다. 잘 쓰고 있는 좋은 우리 말 빛이름을 없애려는 짓은 틀림없는 잘못입니다. 손대지 말고 그대로 두어야겠습니다.
(4) 우리말로 변경되는 관용색은 핑크→분홍, 브라운→갈색, 로즈→장미색, 피치→복숭아색, 블론드→금발색, 스칼릿→진홍색, 스트로베리→딸기색, 브론즈색→청동색 등이다.
=> `분홍`도 `우리말`이라고 하지만 예부터 써온 말로는 `잇빛(잇꽃 빛깔)`이 있습니다. `갈색`도 나쁘지는 않으나 `나뭇빛`이나 `구릿빛`쯤이면 넉넉하지 싶어요. "짙은 빨강"을 가리키는 `장밋빛`이겠지요?
"짙은 빨강"을 가리키는 말로 `장밋빛`도 좋으나 `고춧빛` 같은 살가운 빛깔말도 있어요. 좀더 우리 삶에 가까운 빛깔말로 말입니다. 금덩이 같은 빛을 내는 `금발(金髮)`이라는 말도 나쁜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 보아요. 봄가을에 누렇게 익은 들판에 있는 벼와 보리를 보며 `황금빛 물결`이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볏빛-보릿빛`이라는 말은 우리들이 삶으로 느끼기에 `황금빛`과 가까운 빛깔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5) 이에 따라 기본색 이름은 빨강, 주황, 노랑, 연두, 초록, 청록, 파랑, 남색, 보라, 자주, 분홍, 갈색(이상 유채색)과 하양, 회색, 검정(이상 무채색)으로 표현된다.
=> `주황(朱黃)`도 괜찮지만 `귤빛`이나 `감빛`으로 쓰면 어떨까요. `연두(軟豆)`도 오랜동안 써온 말이지만 `개구리밥빛`이나 `청개구리빛`이랄 수도 있고 `새싹빛`이랄 수도 있습니다. 새로 나는 새싹을 들여다보면 거의 어김없이 `연두빛` 잎을 피워올리는 모습을 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들은 `새싹`을 가리키는 빛깔로 흔히 `연두빛`을 말하는데, 아예 처음부터 `새싹빛`이라 하면 어떠할까요?
`남색(藍色)`을 가리키는 말로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쓴 `쪽빛`이란 말이 있습니다. 우리 전통 옷을 물들이는 빛깔은 어김없이 `쪽빛`이에요. `남색`으로 물들이지 않아요. `청록(靑綠)`은 `수박빛`에 가까울 테고요. 그리고 `잿빛`이라는 말이 있는데 왜 자꾸 `회색(灰色)`만을 고집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회(灰)`란 다름 아닌 `재`를 가리키는 말이거든요.
이밖에도 `꼭두서니빛-대춧빛-배추빛-메밀꽃빛-젖빛-감자빛-고구마빛-당근빛-호박빛-똥빛-노을빛-제비꽃빛-나팔꽃빛-개나리빛-쑥빛-솔(잎)빛-가지빛-치자빛-밤빛-파래빛` 같은 살가운 빛깔말이 많아요. 이런 빛깔말을 가만히 살피고 헤아리면 지금까지 `일본투 빛이름`에 젖어온 문제 있는 빛깔말을 갈음하기 좋습니다.
-빛이름 ← 색이름
-빨강
-귤빛(감빛) ← 주황
-노랑
-새싹빛(개구리밥빛.청개구리빛.배추빛) ← 연두
-풀빛 ← 초록
-수박빛(쑥빛) ← 청록
-파랑
-쪽빛 ← 남색
-제비꽃빛(나팔꽃빛) ← 보라
-가지빛 ← 자주
-잇빛 ← 분홍
-나뭇빛(구릿빛) ← 갈색
-하양
-잿빛 ← 회색
-검정
-고춧빛 ← 장미색
-볏빛(보릿빛) ← 금발
-해맑은 / 짙은 / 칙칙한 ← 선명 / 진 / 탁
우리 자연을 둘러보아요. 책상 앞에서만 머리를 굴리지 말고 논과 밭과 산과 바다와 들로 나가 보아요. 우리를 둘러싼 빛깔이 얼마나 많은지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껴 보아요. 어설프면서 두루뭉술하게 지은 한자말 빛이름은 좋다고 말하기 힘듭니다. 우리말로 가리킬 수 있는 빛깔이름은 끝도 없이 많다고 자주 말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들이 쓰는 빛이름을 살피면 토박이말 빛이름 숫자가 너무 적어요. 적을 뿐 아니라 온갖 빛깔을 헤아리고 생각하는 마음문마저 닫아걸어요.
우리 둘레에 `빨강-노랑-파랑-푸름`을 가리키는 낱말이 얼마나 많은가요. `하양-검정`을 가리키는 말은 어떻고요. 우리가 좀더 멋을 부린다면 `노랑`도 `꾀꼬리빛`이나 `개나리빛`이나 `병아리빛`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파랑`은 `바다빛`이나 `파랑새빛`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테고요. `검정` 또한 `(먹)머루빛`이나 `그림자빛`이라고도 말할 수 있고 `하양`도 `눈빛`이나 `동정빛(옷에 다는 동정)`이라 말할 수 있답니다.
우리가 `일본투 빛이름`을 떨쳐내고 우리 토박이말로 빛이름을 갈음한다는 일은 그저 말만 바꾸는 일로 그쳐서는 모자랍니다. 우리 삶과 자연을 좀더 헤아리는 눈을 기르고 빛을 있는 그대로 살피면서 살가이 다가가려는 생각을 틔울 수 있어야 좋아요.
한 번 바꾸거나 고치면 앞으로 또 여러 열 해 동안 쓸 빛이름이에요. 한 번 바꾸거나 고칠 때 뚜렷하고 반듯한 우리 말을 헤아려서 고치면 좋겠어요. 어설프면서 어줍잖은 빛깔말은 거두어들이면 좋겠고요, 살가우면서 가장 알맞고, 알기 쉽고, 느낌이 좋은 우리 토박이말을 제대로 살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03/11/06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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