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만 되면 우리말과 글을 사랑하자는 ‘캠페인’을 벌이는 ‘매스미디어’를 보면서, ‘아이러니컬한’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의 ‘멘트’와 ‘TV프로그램’ ‘리포터’의 ‘센스’ 있는 우리말 ‘퀴즈’를 접하는 일은 얼마나 부끄럽고 불행한 일인가. 철없는 학생들이 ‘핸드폰’으로 엄마한테 ‘쿠사리’ 먹어 ‘야마’ 돌아 죽겠다며 우리 엄마는 완전히 ‘무대뽀’라고 떠드는 일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자기 여자 친구한테 “꼰대가 욜라 지랄해서 짱 화가 났슴다. 오늘 셤이어꺼든요. 어째껀 집에 오자마자 홈피 게시판 훌타가 버디버디에서 엠피뜨리 딴 받다가 여친을 위해 멜 보내여”라고 하는 중·고등학생들, 게다가 “어떤 대딩 시키가 하드코 많다구 존나 구라 까면서 메씬으로 벨 미친 지랄을 다 하는 거에요”라며 입에 담기조차 거북한 말을 떠드는 일은 이제 우리 주변에서 곧잘 볼 수 있다. 우리말과 글이 어디에까지 와 있는가를 뼈저리게 느끼는 데는 위에 보기로 드는 몇 개의 글로도 충분하다. 말과 글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들은 참담하기까지 한 우리말과 글의 현주소를 낱낱이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마당에 제나라 말글 바로 쓰기는 뒷전에 두고 ‘전 국민의 영어화’를 강요하고 있다. 제 나라 말과 글조차 지키지 못하는 깜냥에 세계화 시대를 외치면서 외국어를 ‘의무교육’에 넣는 일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어렸을 때부터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논리가 옳고 그른지를 따지기 앞서, 그것을 ‘의무’처럼 족쇄를 채우는 것이 옳은지를 가늠해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다른 나라말과 글을 배우기 위해서 비싼 돈을 들이는 현실. 이쯤 되면 과연 누구를 탓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한글날만 되면 잊었던 옛 사진집을 꺼내 보듯 우리말에 대해 너나없이 얘기한다. 그리고 10월9일 자정만 넘으면 이런 얘기는 온데간데 없다. 어떤 이는 많이 배운 티를 내기 위해 영어를, 또 어떤 이는 제 뜻을 알 수 없는 이상야릇한 말을 쓴다. 같은 땅에, 같은 시대에 사는 사람들끼리 이처럼 의사소통이 어렵다면 그 문제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과연 우리말과 글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