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법사위, 법안심사1소위 회부… 공청회 등 통해 의견수렴
한글사용 원칙… 오해 우려있는 697개 용어는 한자병기
변협도 원칙적 찬성… 의미불확실한 조문 수정 의견 제시
민법을 쉽게 표현하기 위한 한글화 작업이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됐다.
하지만 일부 법률용어들이 한글 표현으로는 해석상 부적절 하다는 의견들이 많아 민법 한글화 작업에 차질이 예상된다.
국회법사위(위원장 안상수)는 15일 전체회의를 열고 열린우리당 선병렬 의원 등 49명의 국회의원이 발의한 '민법 전부개정안'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 회부해 논의할 것을 의결했다.
이날 논의된 민법전부개정안은 한글사용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국민들이 민법을 어렵게 생각하는 이유는 어려운 한자어를 남발하기 때문' 이라는 것이 선 의원의 설명이다. 다만 가공(加工)등과 같이 한글만으로는 오해의 우려가 있는 용어와 전문적 법률용어 등 697개용어는 괄호 안에 한자를 병기하도록 했다. 또 '궁박(窮迫)'은 '궁핍', '발(發)하다'는 '발신하다', '요(要)하다'는 '요구하다'등으로 쉽게 쓰고 '양자(養子)를 할 수 있다'는 '입양할 수 있다', '통정(通情)한 허위(虛僞)의' 는 '서로 합의 한 뒤 허위'로, '완제(完濟)하지 못하게 된 때'는 '모두 갚지 못한 때' 등으로 바꿔 국어어문법에 맞도록 문장을 다듬었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진강)는 '민법 전부개정안'에 대해 원칙적으로는 찬성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하지만 지나친 한글화와 한자병기의 생략으로 해석상 문제가 있는 조문이 다수 있어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대한변협은 이같은 의견을 국회에 보냈다고 15일 밝혔다.
변협은 의견서에서 "한글화의 취지에는 찬성하나 지나친 한글화나 한자병기의 생략으로 의미전달이 되지 않는 조문에 대해 수정의견을 제시한다"고 강조했다. 변협은 의견서를 통해 수정유형을 9종류로 분류해 모두 124개 조문에 대한 구체적 수정의견을 제시했다.
권오창 대한변협 법제이사는 "한자를 한글로 바꾸는 것은 한자를 병기한다는 조건으로 찬성한다" 면서 "단 학계와 실무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를 우리말로 다시 창조하는 것은 국민생활에 엄청난 혼란이 있을 수 있으므로 반대한다"고 말했다.
민법의 한글화 작업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전국한자교육추진연합회는 "앞으로 민법한글화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각종 세미나와 공청회를 개최하고 국회에 적극적인 반대의견을 전달하는 등 입법반대활동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단체의 임기석 지도위원은 "쉽다는 개념과 정확하다는 개념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면서 "개념적 사고를 해야 하는 법조문은 쉬운말이 오히려 더 난해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의 원로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국회의원을 지낸 전정구(74) 변호사는 "법조계와 국어학회 등의 충분한 공론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면서 "졸속입법으로 국민의 생활을 크게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대검차장을 지낸 김일두 변호사(83)는 "국민이 쉽게 알도록 하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그로인해 조문의 정확한 의미가 훼손되서는 안된다"면서 "개정을 꼭 해야한다면 조금이라도 의문스러운 용어는 반드시 한자를 병기하라"고 주문했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도 "민법한글화작업은 섣불리 검토할 것이 아니다"면서 "민법 조문을 인용하고 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법률들도 동시에 검토되어야 할 방대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이날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도 민법 한글화 작업에 부정적인 시각이 지적됐다. 김동철 의원은 "이 법안은 법사위 법안소위에서 다룰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라며 "1소위를 거치기 전에 대법원과 법무부, 법제처의 공동작업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법사위 안상수 위원장은 "일단 법안을 법암심사소위원회에 회부한뒤 공청회 등을 통해 각 기관들의 의견을 듣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