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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고 더함 2007/12/28
   
 
 
 
  인물
한글 학자 주시경 선생

`말`과 `글`은 그냥 있는 대로, 되는 대로 쓰면 그만인 것이 아니다. 정성껏 갈고 닦고 다듬고 가꿔 가며 써야 한다. 그것은 우리 생활과 문화 및 역사와 얼까지도 `말`과 `글`에 의해 만들어지고 이어지며 발전돼 가기 때문이다.

우리 말과 글 연구의 터전을 닦은 `겨레의 국어 선생님` 한힌샘 주시경(周詩經ㆍ1876~1914년) 선생의 선구적인 삶을 살펴본다.

주시경 선생은 황해도 평산에서 가난한 선비인 주학원의 자녀 6 남매 가운데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해에 큰 흉년이 들었다. 어머니가 도라지를 캐다가 죽을 쒀서 어린 형제들의 나이 차례로 나눠 먹이곤 했다.

주시경은 12 세 때 큰아버지의 양자가 되어 서울로 왔다.

이 무렵부터 글방에 다니게 됐는데, 그 곳에서 글을 배우는 어린이들은 대부분 장사꾼의 아들들이었다. 물론 글방의 훈장도 학문이 얕았다.

주시경은 더 훌륭한 선생님한테 배우고 싶었다.

그런데 가까운 곳에 이회종이라는 진사가 가르치는 이름난 글방이 있었다.

주시경은 글방에 갔다 올 적마다 그 글방 문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여러 날 동안 그런 일이 계속됐다. 이상하게 여긴 이 진사가 물었다.

"왜 우리 집을 자꾸 기웃거리느냐?"

"선생님 같은 분께 배우고 싶어서요."

주시경은 또렷이 대답했다. 첫눈에 총명한 어린이임을 알아차린 이 진사는 선뜻 허락했다.

"내일부터 아예 우리 집에서 지내며 공부하도록 해라."

그래서 주시경은 17 세가 될 때까지 이 진사의 집에서 공부하게 됐다.

어느 날, 이 진사가 한문의 뜻을 풀이하기 위해 반드시 우리말로 옮기는 것을 보고 주시경의 머리 속에, `글은 말을 적으면 그만인데...`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

이것이 한글 연구에 일생을 바치게 된 동기였다.

`어려운 한문만 배우려고 애쓸 게 아니라, 쉬운 우리글을 더 잘 쓰도록 갈고 닦아야겠다. 그리고 새 학문도 배우자!`

이렇게 마음을 굳힌 주시경은 머리를 짧게 깎고 배재 학당에 들어갔다.

이 때가 1894년으로 주시경의 나이 18 세였다.

주시경 선생은 배재 학당을 졸업한 뒤, 여러 학교와 강습소에서 교사ㆍ강사로서 한글을 가르쳤다. 늘 강의할 교재를 등사해 큼직한 보따리에 싸들고 다녀 `주 보따리`란 별명이 붙여졌다.

특히 1896년 4월 7일 서재필 박사가 창간한 `독립신문`의 교정원을 맡았다. 그래서 처음으로 한글만 쓰고, 띄어쓰기를 하며, 쉬운 우리말을 가려 쓰는 방법으로 신문을 펴냈다.

바쁜 가운데서도 우리글 연구에 꾸준히 힘써 1898년 `조선어 문법`을 완성했다.

1905년에는 국어 연구와 `우리말 모이(사전)` 편찬을 정부에 건의했고, 1907년 국문 연구소의 위원이 되었다.

국어를 널리, 바로 알리기에 온갖 정성을 기울였으며, 김두봉ㆍ최현배ㆍ이병기 등 많은 제자를 길러 냈다.

1914년, 독립 운동 동지들이 감옥에 갇히자 일제의 탄압에서 벗어나려고 외국으로 망명을 준비하던 중 갑작스러운 병으로 숨졌다. 38 세의 짧은 생애였다.

주시경 선생은 우리 말과 글의 과학적 체계를 세운 선구자였으며, 세종대왕 이후 으뜸 가는 국어 학자로 큰 업적을 남겼다.

지은 책으로 `국어문전음학(國語文典音學)`ㆍ`국문초학`ㆍ`말의 소리` 등이 있다. 1980년 대한 민국 건국 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2001/10/23 소년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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