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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른 이 154780823 명
깁고 더함 2007/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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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행타고 번식하는 저속어(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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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값어치가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싸구려’가 된 한글 표준어는 외래어, 은어, 속어 등에 밀려 거리의 간판들에서조차 푸대접을 받는다. ‘우리말은 교과서에만 있다’는 탄식이 들릴 만큼, 방송 영화 공연과 거리에서 저속한 말들이 넘쳐나고 있다.
‘사투리 열풍’은 21세기 한국의 언어 혼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10~20대 인터넷 사용자들을 중심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외계어와 달리, 사투리는 매체와 연령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파급력은 가히 폭발적이다.
억센 경상도 사투리가 쏟아져나오는 영화 ‘친구’가 2001년 전국 관객 820만명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한 이후 사투리는 조연들의 언어가 아니라 주인공의 언어로 급부상했다. 최근 1년만 돌아봐도 사투리로 무장한 ‘가문의 영광’(전라도) ‘선생 김봉두’(강원도)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경상도) 등이 좋은 흥행성적을 올렸고, 곧 개봉될 ‘황산벌’은 경상도·전라도·충청도·평안도 사투리를 모두 장착했다.
KBS 2TV ‘개그콘서트’에서 인기를 끄는 ‘생활사투리’ 코너를 필두로 사투리는 문화의 여러 영역을 가로지른다. 은어(隱語) 사전이 나오는가 하면 엠파스·다음 등 인터넷 포털들은 발빠르게 사투리 사전을 장착하기도 했다. 지난달 출시된 영화 ‘똥개’의 DVD는 경상도 사투리가 그득한 극장판 외에 전라도 사투리 자막과 표준말 자막을 곁들여 눈길을 잡아당긴다. 이 DVD를 제작한 스타맥스 관계자는 “요즘 사투리는 하나의 트렌드이기 때문에 상품성을 키우려고 사투리 자막을 썼다”고 말했다.
거리의 간판들은 한국어를 저질화하는 주범 중 하나다. 더 큰 활자로, 더 원색적으로 아우성치는 듯한 간판들은 거꾸로 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불타는 자갈밭에 춤추는 조개들’ ‘이판저판 고기판’ ‘똥값세일’ ‘골때리네 노래방’ 등 상호는 더 자극적으로 변해간다. 넘쳐나는 영문 간판들은 또 다른 문제다. 조현신 디자인평론가는 “파괴적인 단어조합에 의존하는 간판문화가 횡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말의 혼란 뒤에는 획일성에 대한 거부반응이 있다. 그러나 대량복제된 이 ‘난수표 같은 말들’은 현실로 범람, 언어생활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어수선한 언어생활은 사고력과 기억력 약화로도 이어진다. 이를 가장 빨리 느끼는 분야 중 하나가 출판가. 20~30년 전 평균 9포인트 크기였던 책의 활자는 요즘 10.5포인트로 커졌고, 한 페이지에 30행씩 활자를 박아넣던 빡빡한 출판 관행도 1990년대 들어 24~25행 수준으로 줄었다. 궁리출판사 이갑수 사장은 “요즘 젊은이들은 긴 글 끝에 담긴 속뜻을 읽어내기에는 벅찬 세대”라며 “필자들에게 ‘되도록 짧은 문장으로 써달라’고 주문한다”고 말했다.
방송과 인터넷 등을 통해 말이 모방되고 복제될수록 사고(思考)는 균일화되고 기억도 의미를 잃어버린다. 하종호 고려대(철학) 교수는 “해가 바뀔수록 시험지에서 판에 박힌 답안들이 더 자주 눈에 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말의 유행까지 규제할 수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장영준 중앙대(영문학) 교수는 “젊은이들이 구어체와 문어체를 동일시하는 게 문제지만 말이란 변하는 게 자연스러운 속성”이라며 “10대들의 시장성에 편승해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을 문제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는 이번 한글날 국립극장에서 ‘한글의 위기와 세계화’를 주제로 전시회를 연다. 창씨개명 등 한글의 역사적 수난, 영어 공용화, 인터넷 통신어 등을 통해 오늘의 한글을 돌아볼 계획이다. 한글문화연대 이민규 사무국장은 “한글 표준어는 물·공기와 같아서 일단 파괴되면 복구하기가 어렵다”며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고 한글 훼손을 막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3/10/07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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