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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고 더함 2007/12/28
   
 
 
 
  언어, 사회 현상
한글날을 국경일로 높이자

사람이 언제부터 지구에서 살았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인류학자들 연구 결과로는 대략 300만년 전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이 긴 세월의 대부분을 원시적인 생활을 하다가 약 5천년 전에 문명의 길로 접어들 수 있는 도구를 만들어 썼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글자 발명이었다. 글자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식의 축적과 전달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오늘날 인간을 달에 보내는 수준까지 문명을 발달시켰다.
올해는 세종임금이 훈민정음을 만들어 편 지 557돌이 되는 해다. 세종임금이 한글을 만들기 이전에는 한자를 빌려 문자 생활을 했으나 한자는 글자 수가 많고 배우기 어려워 일반 백성은 거의 쓸 수 없었다. 세종은 백성들이 말대로 적는 글자를 몰라 당하는 어려움을 풀어주기 위해 자음은 소리내는 입·혀·목구멍 모양을 본뜨고, 모음은 하늘·땅·사람(천지인)을 기본으로 하여 음양오행의 동양철학 원리를 바탕으로 정음 28자를 만들어 1446년 9월 상순에 발표하였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할 당시 대부분의 지배계층은 이를 반대하였다. 한글을 오랑캐 글로 깎아내리면서 문명국의 문자인 한자를 버리는 것은 중국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그 뒷면에는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지배계층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이기주의적 발상이 바탕에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글은 이렇게 탄생 때부터 어려움을 겪었고 일본 강점기에는 사용이 금지되는 어려움까지 있었지만 끈질긴 생명력으로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지켜온 버팀목이 되었다.

한글 창제 557돌을 맞는 오늘, 그리도 많은 고난을 헤쳐온 우리말글이 처한 현실을 본다면 세종의 심기는 어떠할까 두말할 것 없이 불편하고 서글플 것이다. 임금한테 올라오는 상소문은 온통 한자로 되어 있고, 500년이 지난 지금도 한글 창제를 반대한 학자들의 망령이 되살아나 한글 전용에 발목을 잡고 있으니 어찌 심기가 편하겠는가. 그뿐만 아니다. 최근에는 영어 공용 주장까지 나오고 있으니 무려 500년 전에 오늘의 컴퓨터 사용까지 내다봐 불편 없는 글자를 만든 세종의 마음이 편할 수 있겠는가 문화시대를 맞아 거대 자본이나 바깥 세력에 의한 문화 종속을 막기 위해 나라마다 문화 유산을 보존·발전시키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문화적 주체성이 나라 경쟁력의 잣대가 된 시대를 사는 우리가 가장 먼저 이뤄나가야 할 과제는 겨레 정신과 예술혼을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말과 글을 소중하게 다듬고 보급해 나가는 일이다.

아무리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도 모국어인 한국어보다는 잘 부려쓰지 못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말로 말하고 글을 써야 편하고 의미 전달이 정확하다. 외래어인 ‘허브’, ‘로드맵’보다는 ‘중심’, ‘추진일정, 이정표’ 등으로 바꿔 쓰면 훨씬 이해하기 쉽지 않은까 언제부터인가 다방은 커피숍으로, 예식장은 웨딩홀로 바뀌었다. 외래어는 고상하고 우리말은 천박한 것으로 생각하는 외국어 선호 성향이 생겼다. 이런 성향이 한글 창제를 반대했던 학자들의 생각바탕과 무엇이 다르랴! 민족문화의 보루이며 민본정신까지 지닌 자랑스런 한글을 만들어 반포한 날을 국경일로 만들자! 지금 4대 국경일을 포함하여 법정 공휴일을 살펴보면 공휴일로 지정한 사유가 퇴색되었거나 일부 국민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적지 않다. 그에 반하여 한글은 모든 국민이 단 하루도 쓰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대대손손 물려주어야 할 고귀한 문화 유산이고 생활 수단 아닌가 정부는 주5일 근무제 시행에 앞서 공휴일을 조정한다고 한다. 국경일은 국가의 경사스런 날이다. 한글날보다 국경일이 되어야 할 마땅한 조건을 갖춘 경사스러운 날은 없다고 본다. 이 참에 한글날을 국경일로 높이는 값진 결단을 기대한다.

김수연/문화관광부 감사관

2003/10/08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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