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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고 더함 2007/12/28
   
 
 
 
  언어, 사회 현상
횡설수설상
1950·60년대 뮤지컬과 영화로 만들어져 선풍적 인기를 모았던 ‘마이 페어 레이디’는 하층민의 거친 말을 쓰는 거리의 꽃 파는 한 처녀가 언어훈련을 통해 상류사회로 진입해 들어가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언어학자로부터 말만 잘 배우면 화려한 무도회에 데뷔시켜주겠다는 제안을 받은 처녀(영화에서는 오드리 헵번)는 품위 있는 말을 배우기 위해 애쓰지만 그게 추운 거리에서 꽃 파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임을 알고 포기하려 한다.

그때 언어학자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언어의 품격과 위대함이다. 이것이 없다면 우리는 이웃의 깊은 마음속에 도달할 길이 없다”고 처녀를 설득한다.

▶사람이 쓰는 말에는 분명 품격이 있다. 거기에는 그 사람의 인격과 지식, 성격과 살아온 삶의 궤적 등이 알게 모르게 배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품격을 따지기 전에 말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요건은 의사 소통 수단으로서의 명료함일 것이다. 아무리 멋을 부리고 광을 냈을지라도 도대체 무슨 뜻인지 헷갈리는 말은 또 다른 공해일 뿐이다.

▶영어권에서는 어법이 엉망이거나 뜻이 뒤죽박죽이어서 영어의 품격을 해쳤다고 판단되는 발언을 한 정치인이나 유명인에게 주는 ‘Foot in Mouth(횡설수설)’상이 1993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작년에는 “나는 내가 누군지 안다. 다른 사람은 그 누구도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 내가 만약 기린인데 다른 사람이 나를 뱀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아니야, 난 사실 기린이야’라고 생각할 것이다”는 알쏭달쏭한 말을 한 미국 배우 리처드 기어에게 이 상이 돌아갔다.

▶올해에는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보도가 늘 나의 흥미를 끈다. 알다시피 세상에는 알려진 것이 알려지고, 우리가 알고 있는 일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슨 선(禪)문답인지 알 수가 없다. 이라크사태와 관련해 작년 2월 브리핑 때 기자들에게 한 말인데 금년의 수상작으로 뽑힐 정도였으니 사람들을 어리둥절케 하는 데는 압권이었던 모양이다.

▶말이 애매모호해지고 앞뒤가 안 맞고, 말 하는 사람 자신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를 지경이 되는 것은 어법을 몰라서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없거나 이전에 한 말과의 일관성을 잃게 되면 스스로 말의 미궁으로 빠져들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상이 하나 만들어진다면 첫 수상자는 누가 될까.

김현호 논설위원

2003/12/03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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