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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고 더함 2007/12/28
   
 
 
 
  교육, 학술
인사말도 제대로 못하는 방송

방송은 언론매체이자 대중매체이다. 국민은 직·간접적으로 시청료를 부담하고 있기 때문에 방송매체를 통하여 올바른 정보와 건강하고 유익한 오락을 제공받을 권리를 지닌다.

따라서 방송은 온 국민이 올바른 문화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바르고 정확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말을 바르게 써야 한다는 운명적 숙제를 안고 있음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막상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켜면 현실은 그렇지 않음을 금방 알 수 있다.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우리말이 얼마나 망가지고 헝클어지고 있는지 그 심각성을 걱정해보고자 한다.

건강을 주제로 이야기할 때 진행자나 전문의나 할 것 없이 죄다 ‘피로 회복’이란 말을 ‘피로가 풀린다’란 의미로 쓰고 있다. 어이가 없고 너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똑똑한 사람들끼리 모여 다같이 즐겁게(?) 틀리고 있으니 말이다. 피로 회복이 뭔가.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든 상태를 다시 찾음’이란 뜻이다. 도대체 피로를 다시 찾겠다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이 말은 ‘건강 회복’ ‘원기 회복’ ‘기력 회복’으로 바꾸어 써야 한다.

KBS의 김모 아나운서와 MBC의 박모 진행자는 프로그램 말미에 꼭 “건강하십시오” 혹은 “오늘 하루도 행복하십시오”라고 인사를 한다. 우리 어법에 맞지 않는 말들이다. ‘건강하다’ ‘행복하다’는 모두 형용사이다. 아시다시피 형용사는 어떤 상태를 묘사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명령형으로 쓰일 수 없다. “똑똑하십시오” “귀여우십시오”가 말이 되는가. “부디 건강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하는 건 숨이 차서 힘들까.

얼마전 내가 진행을 맡았던 KBS 제2라디오 ‘라디오가 좋아요’라는 프로그램에 가수 이효리가 나왔다. 내가 물었다.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지요?” 이효리가 대답했다. “네, 그저 이번에 나온 제 앨범이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바램밖엔 없어요.” ‘바램’이 아니고 ‘바람’이다. 방송 출연자의 99%가 틀리는 말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 가수 옥주현도 나왔다. 내가 물었다. “지난 음반에 특별히 미련이 남는 부분이 있나요?” 옥주현이 말했다. “처음부터 대중성으로 쇼부를 쳤어야 했는데, 너무 제 고집만 부렸던 것이 좀 후회스러워요.” 다행히 그 방송은 녹음이어서 프로듀서가 일본말인 ‘쇼부’를 편집했다. KBS 1TV가 언젠가 요리 프로그램에서 ‘오늘의 요리-청국장’을 방송했다. 청국장은 ‘삶은 콩을 더운 방에서 띄워 반쯤 찧다가 고춧가루와 소금을 넣어 만든 장’이다. 그래서 청국장은 어디까지나 재료에 불과하다. 청국장이 요리라면 간장·된장·고추장도 요리여야 한다.

MBC TV가 ‘느낌표’에서 책과 관련한 방송을 고정으로 내보낼 때 잠시 우리나라 전역에 책 열풍이 불었다. 그 바람은 참 시원하고 반가운 바람이었는데 종종 이런 말이 들려 아쉬웠다.

“책갈피까지 친절하게 끼워 두셨군요!”(김용만), “네. 책갈피가 아예 금이네요, 금!”(유재석)

책갈피는 틀린 말이다. 책갈피는 ‘책장과 책장 사이’를 일컫는다. 따라서 ‘갈피표’라 해야 옳다. 오락 프로그램에서 남자들이 가슴을 드러내면 “갑빠가 예술이네요” 하고, 드라마에선 주인공이 “여긴 후앙도 안 트나?”라면서 명연기를 펼치고 있다.

연예 프로그램 진행자들은 “계속해서 다음 코너는…” 하며 이 ‘구석’ 저 ‘구석’을 소개한다. 왜 하필 ‘코너’이고 ‘구석’일까. ‘롱다리’가 판을 치고 ‘얼큰이’가 악을 쓰며 ‘몸짱’ 아주머니가 훌훌 벗고 나온다.

언제까지 이럴 것인가. 국민의 문화 선생님이 되어야 할 방송매체가 언제까지 시청자와 청취자들의 입맛만 맞추고 눈치만 볼 것인가. 학생들의 입이 병들어 간다. 국민들의 말글살이가 썩어가고 있다.

〈이동우 한글문화연대 운영위원〉

2004/10/25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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