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말이라도 된소리로 발음하면 힘과 함께 ‘상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한국인의 언어 감각이다. 된소리로 시작되는 말에 비속어가 특히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상스럽다’는 말도 ‘쌍스럽다’고 표기하면 상스러움이 더 강렬해진다).
장(長)을 경음화한 ‘짱’이라는 말도 원래는 교내 불량배를 가리키는 비속어였다. 교실에는 민주적으로 선발된 반장이 있듯이 힘으로 집권한 ‘반 짱’이 있다. 또 학교장(교장)을 ‘학교 짱’이라고 발음하면 교내 짱들을 평정한 ‘짱중의 짱’을 의미한다.
학원 내 어둠의 세력―‘반지의 제왕’ 식으로 말하면 사우론을 상징하던 이런 ‘짱’이라는 단어가 그동안의 부정적 뉘앙스를 훌훌 털고 사회 전 분야를 휩쓸고 있다. 얼짱?몸짱 신드롬이다.
또래들의 용돈이나 갈취하던 짱이 이렇게 빛의 세계로 등장하는 데는 주먹짱들의 의리와 사랑을 다룬 ‘친구’ ‘품행제로’ ‘화산고(高)’ ‘두사부일체’ ‘동갑내기 과외하기’ ‘말죽거리 잔혹사’ 등 수많은 학원 폭력영화의 상업적 성공에 힘입은 바 크다. 학원에서 모범생이 되레 왕따당하다 보니 요즘엔 TV의 학교 드라마조차 반장은 안 나와도,‘반 짱’이 안 나오면 드라마가 안 될 지경이다.
‘짱’이란 말과 동의어로 ‘캡’이 있다. 명사로도 쓰이고(“몸매가 캡이야!”) 부사로도 쓰이고(“캡 좋더라”) 사람도 뜻하는(“네가 캡 해라”) ‘캡’ 역시 영어로 ‘반장’을 뜻하는 ‘캡틴’(cap의 어원도 ‘우두머리’)에서 나왔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영어교사 로빈 윌리엄스가 자기를 미스터(선생님)가 아니라 ‘캡틴’으로 불러달라고 했을 때의 그 캡이다. 그러나 학원 무림에 2인자는 없는 법―‘짱’이 ‘캡’과 맞짱떠 이기면서 캡은 소멸해가는 단어가 됐다. 덧붙여 ‘짱’이 씨(氏)의 일본식 발음인 ‘상’을 귀엽게 부르는 ‘짱’에서 나왔다고 잘못 유추하는 것도 얼짱·몸짱의 외모 중시 속성 때문이다.
‘얼짱식 사진찍기’라고 해서 카메라를 올려다 보고 찍으면 이마가 넓어 보이고 눈도 커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특수강도죄를 지은 미모의 여성 수배 사진 한 장 때문에 ‘강짱’(강도 얼짱)팬카페가 등장하고,총선을 앞둔 정치권까지 얼굴좀 되는 20대 여성 정치인들이 각광을 받는 현실은 도가 지나쳤다. 폭력의 미화에서 외모의 숭배로 옮겨간 요즘의 짱문화가 사회 전반을 점점 더 표피적이고 상스럽게 만들고 있어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