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유용한 활용 가능성에 대한 신뢰,교환가치로서 환원될 수 있는 등가물로서의 시간,이성 숭배와 같은 합리적 모더니티에 대한 유토피아와 데카당스와 급진주의로 기울어져가는 디스토피아적 모더니티의 두 날개가 떨어져 나가 무와 카오스의 심연으로 추락해가는 이카루스가 그가 창조하는 인물들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인터넷에 뜬 평론의 한 문장이다. 이 글을 읽고 적어도 단번에 그 뜻을 제대로 해독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하물며 지식인도 아닌 일반인들이라면? 또 북한 주민들이라면?
분단 이후 심화돼온 남북한간 언어 이질화 현상은 두말 할 나위조차 없이 새삼스럽다. 오죽하면 지지난해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정부 내에서 통역요원을 배치할 필요성마저 제기됐을까. 실제로 문화관광부가 대학에 의뢰해 남한에 정착한 탈북 주민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대다수(72%)가 언어 차이로 인한 생활 불편을 실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말은 물론 읽기 영역에서도.
그러나 글에 관한 한 탈북 주민들은 그다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제 나라 글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는 남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므로. 보도에 따르면 한국교육개발원이 우리 국민 1200여명을 대상으로 국제 성인 문서해독력조사(IALS)를 실시한 결과 문서를 해독 활용하는 능력은 OECD 23개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에 속한 것으로 드러났다. 구체적으로 영수증,구직원서,열차 시간표,지도,약품 설명서 등의 그림이나 도표를 이해하는 문서문해력 영역에서는 조사 대상 20개국 중 19위,신문기사나 소설 등을 이해하는 산문문해 영역에서는 13위에 불과했다고 한다.
배우기 쉬운 한글 덕에 거의 100%에 육박하는 문자해독률(literacy)을 자랑하는 우리가 어쩌다 이런 신세로 전락했을까. 우선은 국민 개개인이 문서,특히 글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과 소양을 스스로 계발하는 데 소홀했음을 지적할 수 있다. 글은 읽을 수 있다고 자동적으로 그 뜻까지 파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휘력은 물론 글의 전후 맥락을 짚어낼 수 있는 분석력과 글이 쓰인 배경 및 여건 등을 포함해 가능한 한 풍부한 상식을 갖춰야 한다. 이는 무엇보다 꾸준한 독서를 통해 이룰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심각한 원인으로 올바른 글쓰기가 무시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앞서 인용한 평론문장처럼 현학(衒學)취미랄지 나름대로 `미문(美文)`을 만들기 위한 과잉 기교로 인해 문법에 어긋나거나 앞뒤가 맞지 않아 의미 전달이 안 되는 어려운 글이 넘쳐나는가 하면 오히려 글을 너무 쉽게 여긴 나머지 도무지 요령 부득인 상품 설명서 같은 글도 지천이다. 말하자면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더 문제라는 얘기. 올바른 글쓰기 교육과 훈련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