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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고 더함 2007/12/28
   
 
 
 
  언어, 사회 현상
공용어는 여러 언어 사용될 때 쓰는 말

몇 해 전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영어가 공용어가 되면 좋은데 그렇지 않아서 문제라는 것이었다. 반대가 거세 쑥 들어가고 말았지만 잊을 만하면 이따금씩 불쑥 튀어나오는 게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주장이다. 영어 공용어화 논쟁이 뚜렷한 소득 없이 싱겁게 끝나고 마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적절하지 않은 용어를 엉뚱한 데다 쓰다 보니 논의가 결실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적절하지 않은 용어란 바로 ‘공용어’라는 말이다. 공용어는 나라 안에서 공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공용어라는 말이 별로 쓰이지 않았는데 이유가 자명하다. 한국에서는 집에서든 바깥에서든 한국어만 썼으므로 굳이 공용어라는 말이 필요치 않았던 것이다. 공용어라는 말이 필요한 곳은 여러 언어가 사용되는 나라이다. 한국, 일본과 유럽의 몇 나라를 제외하면 세계적으로 소수민족이 없는 나라가 드물다. 중국에는 주류 민족인 한족 외에 소수민족이 쉰다섯 민족이나 되고, 러시아에는 더 많은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미국은 또 어떤가.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이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전세계에서 이민 온 다양한 민족이 적어도 집에서는 제 언어를 쓰고 있는 형편이다. 또한 인도에는 수백의 언어가 쓰이고 있다. 이렇게 한 나라 안에서 수많은 언어가 사용될 경우 의당 공용어가 있어야 한다. 공통의 언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수천 년 전부터 가정에서건 사회에서건 한국어만을 써 왔으므로 한국어가 당연히 공용어이고, 그래서 아예 공용어라는 말조차 필요치 않았던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한국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한다면 공용어가 한국어와 영어 둘이 된다. 그렇다면 당장 텔레비전의 9시 뉴스는 한국어로 할 것인지, 영어로 할 것인지가 문제다. 또 연속극은 어느 언어로 할 것인가. 결국 두 언어를 공용어로 한다면 영어 방송 채널과 한국어 방송 채널이 따로 있을 수밖에 없다. 영어 방송 채널은 모든 프로그램을 영어로만 해야 하는데 그럴 준비가 되어 있고, 능력이 있는가.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어느 한 언어로 말할 수밖에 없는 경우이다.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연설을 할 때 어느 언어로 할 것인가. 국회에서 국회의원들끼리 국사를 논의할 때 어떤 언어로 할 것인가. 영어를 공용어로 주장하는 이들도 설마 대통령이 영어로 국정 연설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조금만 생각해 보면 공용어를 둘 쓰자는 주장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무모한지 금방 드러난다. 공용어를 둘 쓰다가 하나 더 쓰는 것과 공용어가 하나인데 둘 쓰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르다.

영어를 공용어로 쓰자고 주장하는 이들은 외국인들을 상대로 영어를 좀더 많이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고 잘못 표현했다고 필자는 믿는다. 물론 아예 한국어를 공용어의 지위에서 끌어내리고 영어만을 공용어로 하자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는 줄 안다. 그러나 그것은 까마득한 미래의 일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언어는 세상을 보는 눈인데 어찌 수천, 수만 년 전부터 써 온 말을 간단히 버리고 다른 말을 쓰자고 할 수 있을까.

굳이 공용어라는 말이 필요없을 정도로 단일한 언어를 가진 우리는 매우 복받은 나라이다. 복잡한 언어 문제가 없어서 좋다. 이런 복이 겨워서 무모한 주장을 함부로 펴는가. 세계를 상대로 우리의 이익을 늘리기 위해 외국인들을 상대로 영어를 구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한 활동을 할 때의 영어는 외국어일 뿐이지 한국의 공용어일 수는 없다. 한국의 공용어는 한국어 하나로 족하다.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주장은 용어 선택을 잘못한 것이어서 애초에 논쟁의 가치조차 없는 것이었다.

2004/08/03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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