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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고 더함 2007/12/28
   
 
 
 
  교육, 학술
알바’와 ‘바이토’/김욱동 서강대 교수·문학평론가

몇 해 전 일본을 여행할 때 도쿄 시내 길거리에서 ‘바이토 모집’이라는 간판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

이런 간판을 내걸고 있는 곳이 하나같이 가게인 점으로 미루어보아 아마 사람을 모집하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과연 어떤 사람을 모집한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었지만 아르바이트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광고였다. 일본 사람들은 ‘아르바이트’(Arbeit)라는 독일어에서 생선 대가리를 잘라내듯 앞 음절을 잘라내 버리고 ‘바이트’라는 뒤 음절을 취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도 길거리를 가다 보면 ‘알바 모집’이라는 간판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학생들이 주고받는 대화에서도 이 말을 자주 듣는다. ‘알바’란 ‘바이토’와 마찬가지로 아르바이트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을 가리킴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본디 ‘아르바이트’라는 독일어는 생업, 노동, 작업 또는 연구 등을 뜻하는 말이다. 부업이라는 뜻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영어의 ‘워크’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본격적인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 말이 일본이나 한국 같은 아시아에 와서는 부업이라는 뜻으로 그 격이 뚝 떨어져 버린다.

그런데 같은 독일어를 취해 쓰면서도 왜 일본 사람들은 ‘바이토’라고 하고,우리나라 사람들은 ‘알바’라고 하는 것일까? 언어학적으로 보자면 ‘알바’보다는 ‘바이토’가 더 이치에 맞는다. 의미의 무게가 ‘아르’보다는 ‘바이트’ 쪽에 실려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음절 단위로 보더라도 ‘아르’와 ‘바이트’로 분철할 수는 있어도 ‘알바’(아르바)로는 분철할 수 없다. 이렇게 문법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알바’라고 하는 것은 의미니 음절이니 가리지 않고 무조건 앞쪽을 택하고 보는 우리네 언어 습관 때문이다.

몇 해 전 우리나라 영화관에서 ‘어게인스트’라는 제목의 할리우드 영화가 크게 히트한 적이 있다. 아무래도 영어 전치사 하나로 제목을 삼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전치사는 반대, 대립, 적대 관계 등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이에 따른 충돌이나 불리 따위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서양어의 전치사란 우리말의 조사처럼 홀로 설 수 없고 반드시 다른 말과 함께 사용되어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을 확인해 보니 ‘어게인스트 올 디 오즈’(Against All the Odds)라고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온갖 역경을 딛고’라는 뜻이다.

그 때서야 비로소 왜 그 영화의 제목을 그렇게 붙였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도 영화 수입자는 가장 핵심적인 뒤쪽 낱말은 모두 빼 버린 채 맨 앞의 전치사 한 토막만을 취해와 제목으로 삼았던 것이다.

비단 영화 제목만이 아니다. 몇 해 전에는 ‘위스’(With)라는 여성 잡지가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이 잡지의 제호도 뜻이 통하지 않는다. 동반,접촉,일치 등과 함께 수단이나 도구 따위를 나타내는 이 전치사도 ‘어게인스트’처럼 혼자만으로는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우리나라에는 국어를 연구하기 위한 기관으로 국립국어연구원이 있다. 국어연구원은 맞춤법뿐만 아니라 국어와 함께 자주 사용하는 외래어나 외국어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김욱동 서강대 교수·문학평론가

2004/09/16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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