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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른 이 155051975 명
깁고 더함 2007/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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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의 수수께끼’…한글만이 우리 문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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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자의 변천사가 과연 일반 독자들의 흥미를 끄는 대중출판의 소재가 될 수 있을까. 책은 박영준·시정곤·정주리·최경봉 교수 등 4명의 30, 40대 소장 학자들이 한글과 그 이전의 이두, 향찰, 구결 등에 얽힌 얘기, 한글 맞춤법, 한글 풀어쓰기 프로젝트, 로마자표기 논쟁, 그리고 네티즌들의 맞춤법 파괴와 ‘21세기의 상형문자’ 이모티콘까지 흥미롭게 전개한 최초의 대중교양서다.
전화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아버지인 멜빌 벨이 1867년 농아들을 위해 발음기관의 위치와 조어방식을 그림으로 추상화한 문자 ‘보이는 음성’(Visible Speech)을 발명했을 때 미국 언어학회는 큰 관심을 보였다.96년 뒤(1963년) 미국의 매콜리 교수는 조선의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이 ‘보이는 음성’과 똑같은 원리로 창제됐으며 무려 400여 년을 앞섰다는 사실을 밝혀내면서 한글은 세계 최고의 음성문자로 등극한다. 현재 한글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의 하나다.
만일 한글 창제가 실패했다면
저자들은 이런 식의 에피소드도 소개하고 퀴즈식의 질문, 한글 창제가 실패했다고 가정하는 ‘비명을 찾아서’(복거일)식의 대체역사적 상상력, 기존 국어상식을 뒤집는 식의 다양한 장치로 독자들을 유혹한다. 이두를 설총이 만들었다는 진짜 맞어? 세종이 일류 언어학자라는 건 신하들의 립서비스 아냐? 훈민정음은 다른 나라 글자를 베낀 거라는데? 최만리가 한글창제를 반대한 진짜 이유는? 한글창제 당시엔 ‘ㄱ’을 어떻게 읽은 거야? 등등. 새로운 사실을 밝혀낸 우리말의 X파일은 아니지만 일반독자들에겐 흥미로울 만한 사실들을 쉽고 재미있게 써내려갔다.
한글만이 우리 문자인 줄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한글 창제 전에도 우리말을 표기하기 위해 향찰, 이두, 구결 등의 표기법이 사용되었고 한글 창제 이후에도 이두와 구결은 수백년 동안 우리말의 표기 방식으로 한글보다 더 큰 지위를 누려왔다. 그런데도 같은 우리말의 표기법인 향찰, 이두, 구결 등에 대해 우리는 기본 상식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무엇이며 셋의 차이는 무엇인가, 왜 향찰은 일찍 사라졌고 이두와 구결은 남아서 일본문자인 가나의 발명에 기여했는가.
현존하는 향가 25수를 표기했던 향찰(鄕札)은 한자의 음과 훈을 빌어서 고안한 ‘순수한 우리의 문자’인 반면 이두는 한문 문장을 우리의 어순으로 재배열하고 토씨나 어미만 향찰식으로 붙인 한문과 우리말 어순이 퓨전된 변칙적인 한문문장이었다. 또 향찰은 한문에 대한 상당한 지식이 필요해 신라 귀족층에서만 사용한 고급문자였던 반면 이두는 중간관리들이 공무에 사용하는 실용적인 문자였다.
최만리에게 쩔쩔 매는 세종대왕
향찰은 신라이후 양반들의 한문실력이 완벽의 경지에 이르자 폐기처분되는 운명에 처해진 반면 한문실력이 떨어지는 중인들이 공문서 등에 사용했던 이두는 한글 창제 이후는 물론 갑오경장까지 살아남는다. 여기에는 향찰이 예술의 언어였던 반면 이두는 실용 언어였다는 점도 이두의 긴 생명력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한문 경전의 행간에 보일듯 말듯 적혀있는 미니글자들을 ‘구결’(口訣)이라고 한다. 구결은 ‘경전을 소리내어 읽을 때(讀經)’편리했다. 구결자는 초서체를 빌려오거나 한자의 일부분을 떼어내 만든 새로운 문자체였다. 이 구결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의 문자인 가나가 되었다.
훈민정음 창제를 둘러싸고 재밌는 에피소드가 많이 소개돼 있다. 창제 이후 끊임없이 제기됐던 훈민정음의 모방설, 한글 창제의 산실인 집현전의 부제학이었던 최만리가 한글창제에 배제된 이유, 그의 목숨을 건 끝없는 상소의 내막도 읽음직하다. 세종은 청렴한 학자에 언어학적 식견도 높았던 최만리에게 한글 창제의 독창성을 숨기고 “훈민정음은 모두 옛글자를 본뜬 것이고 새로 된 것이 없다”고 변명한다.하지만 최만리는 “글자의 생김새는 전자(篆字:한자의 옛 글자체)를 닮았을지라도 음을 쓰고 합하는 원리는 전혀 옛것에 반대된다”며 세종을 몰아붙인다! 이런 이야기를 따라가는 동안 독자들은 훈민정음 프로젝트가 마련되고, 진행되고, 시제품이 생산되고, 관리되는 모든 과정을 생생하게 체험하게 된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엔 ‘ㄱ,ㄴ,ㄷ…’을 어떻게 읽었을까.
학교에서 배운 상식은 ‘기역 니은 디귿…’으로 읽은 것은 한글창제 100년쯤 지난 최세진의 ‘훈몽자회’때부터며, “전에는 이름이 따로 없었다”일 것이다. 저자들은 “정말 그랬을까”라고 물음표를 던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은 ‘기 니 디 리…’로 읽었다고 추측한다. 무슨 근거로? 첫째는 창제 당시의 ‘훈민정음 해례’에 나오는 “ㄱ는 어금닛소리로 君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으니…”라는 대목. ‘ㄱ’ 다음에 ‘은’ 아닌 ‘는’이 연결된 것으로 ‘ㄱ’을 ‘받침없는 글자’로 읽었다는 증거다. 이것이 단음절이었다면 ‘가 나 다’ 식이 아니었을까. 둘째 근거는 ‘훈몽자회’가 기역, 니은, 디귿과 달리 ‘ㅋ ㅊ ㅍ…’은 ‘箕(키),治(치),피(皮)…’로 읽고 있는 점이다. 결국 원래 ‘기 니 디 리…’로 읽었는데, 최세진이 ㄱ∼ㅇ 8자는 초성과 종성으로 함께 쓸 수 있다는 활용 예로 ‘기’를 ‘기역’식으로 읽었다는 해석이다.
또 하나의 재미있는 추론. 기역(其役) 디귿(池末) 시옷(時衣)식으로 한자를 빌어 쓰기는 했지만 실제 발음은 ‘기윽’ ‘디읃’ ‘시읏’이었을 거라는 대목이다(이두가 그런 식이었다). 어쩌면 현대를 사는 우리만 한자음대로 읽도록 교육받아 이 네 자음의 발음이 틀리는 건 아닌지(북한에서는 ‘기윽, 디읃, 시읏’으로 읽는다).
채팅의 맞춤법 파괴―다시 시작되는 논쟁
일제시대인 1932년 최현배파와 박승빈파가 공청회에서 벌인 사흘 간의 치열한 공방도 재미있다. 여기서 최현배파가 승리를 거둬 현대 맞춤법 통일안의 근간이 된다. 하지만 요즘 네티즌들이 채팅문법―겹받침을 생략하거나 발음대로 쓰려는 표기방식(시프트키를 가능한한 적게 누르겠다는 의도)을 보면서 대한제국부터 시작된 음소주의(소리대로 적기)와 형태주의(어원 밝혀 적기)의 끝없는 논쟁을 떠올리게 된다. 또 주시경 때부터 시도됐던 한글 풀어쓰기가 성공했다면 음소주의가 힘을 얻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해보게 된다.
2002/05/07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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