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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고 더함 2007/12/28
   
 
 
 
  교육, 학술
조어(造語)가 넘치나이다

대학 신입생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내가 쓴 시 몇 편을 들고 교수님을 찾았다. 시를 세심히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시기에 칭찬의 말씀을 들려주시려나 잠시 기대를 했다. 그러나 내 기대와는 달리 시에 붙여진 제목의 의미를 물으시곤 ‘시어’로 ‘조어(造語)’를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는 주의를 주셨다.

그뿐만 아니라 다음 수업시간에 돌연 시와 시어에 관하여 설명하셨다. 그 후로 나는 기왕의 단어만 사용해도 아름다운 글이 무수히 나오는데, 굳이 내 멋대로 낱말을 만들어 혼란스럽게 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벌써 20년도 더 지난 일이다. 그러니 언어의 변화와 낱말 형태의 변형, 외래어 남발, 문자의 기호화 등에 대해 염려하고 문제시하는 것이 새삼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세태를 반영하지 못하는 태도라 해도 나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이런 현상을 심히 우려한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상품은 여지없이 외래어나 형태를 변형시킨 이름을 달고 있다. 외국에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상호 빌려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글씨는 아예 엉뚱하게 둔갑해 한글도 외래어도 아닌 이해할 수 없는 글자가 된 것도 다반사다. 자기들만 통하는 기호를 사용하여 외래어를 넘어 외계어처럼 만드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수도 없이 국적 불명의 단어들이 쏟아져 나와 문자체계가 어지럽다.

훈민정음은 한글의 시작으로, 쉽게 익혀 널리 통하게 하려는 세종대왕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정지용의 시를 보면 우리 글을 얼마나 아름답게 쓰고자 애썼는지 느껴진다. 또 순 우리말 이름을 짓거나 우리 글만 사용하자는 운동이 펼쳐지기도 했다.

이렇듯 많은 분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위험수위를 넘는 조어들과 만난다. 우리 글 경시와 홀대를 어디까지 방치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오늘의 한글 사용 행태를 보노라면 과거 한글을 말살하려던 일본의 강압적인 식민통치 아래서 우리 글을 지키고자 고뇌하던 선인들의 노고가 사라진 듯하여 안타깝다.

요즘 세대는 한글에 알파벳과 문자표의 전각기호를 혼용하여 전혀 이해하기 힘든 글자를 만든다. 그들은 기호화하고 암호화된 글을 해독할 수 있어야만 서로가 통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이렇듯 한글을 훼손해 알아보기 힘들게 만들어버리는 것을 아무런 대처 없이 그대로 두어도 되는 것인가. 세종대왕께서 오늘날 한글의 쓰임이 어떠하냐 물으신다면 조어가 넘쳐나는 현실을 어떻게 아뢰어야 할까.

백명애(수필가)

2005/04/26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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