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한글 창제 599돌을 앞두고 돌아보는 우리의 언어 생활엔 자랑과 부끄러움이 엇갈린다. 누구나 배우기 쉬운 한글과 뜨거운 교육열 덕분에 우리나라 문맹률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1% 미만이다. 한글의 과학성은 지식정보화시대를 맞으면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우리 청소년들을 보라. 하나같이 손놀림이 현란해 ‘엄지족’이 따로 없다. 그렇게 입력과 검색이 쉽고 빠르며, 음성 인식률 등 정보기술 적응력이 뛰어난 우수한 문자를 우리는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 탁월한 문화적 안목으로 국가의 만년대계를 세운 세종대왕과 숱한 질곡의 역사 속에서도 한글을 지키고 가꿔 온 선구자들에게 새삼 감사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한글을 파괴하고 홀대하는 풍조만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부나 공공단체부터 ‘태스크포스팀’이니 ‘로드맵’이니 하며 우리 말글을 밀어내는가 하면 인터넷 등에는 ‘어솨요’ ‘안냐세요’ 등과 같은 한글 파괴가 날로 심해지고 있다.
한편 우리의 국력 신장과 함께 한국어능력시험에 응시하는 외국인이 최근 느는 추세는 고무적이다. 올해는 24개국에서 2만7000여명이 응시해 지난해 1만7000여명보다 50% 이상이나 늘었다. 국제화 시대에 한국의 위상은 곧 한국어의 위상과 비례한다. 따라서 외국에서 인기를 끄는 우리 드라마와 영화 등의 한류 열기에서 한국어 붐이나 한국학 연구 열기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전략적 차원에서 적극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해외 한국문화원과 한글학교 등에 제대로 된 수준별 한국어 교재를 주요 언어권별로 개발·공급하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 될 것이다. 예산이 부족하다면 기부금을 권장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세종시대와 같은 신르네상스 운동을 일으키고 북돋우는 정부의 의지와 정치권의 트인 안목이 아쉬운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