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집’이나 ‘식당’, ‘레스토랑’은 뭔가를 먹는 집이란 점에서 같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셋이 어떻게 다른지 안 가보고도 안다. 메뉴나 분위기가 그럴듯하고 값이 비싸다면 레스토랑이다. 허름하고 싸면 밥집이다. 식당은 그 중간이다. ‘알몸’과 ‘나체’와 ‘누드’도 마찬가지다. 셋은 거의 같은 뜻이지만 사진전이나 퍼포먼스 같은 문화행사에는 ‘누드’란 말을 쓴다. 반면 살인사건을 전할 때는 “알몸인 채로 발견됐다” 식이다.
▶한글날이 돌아올 무렵이면 우리말이 얼마나 아름답고 풍부한가를 새삼스레 얘기한다. 그때마다 홍명희의 ‘임꺽정’이며 박경리의 ‘토지’, 김주영의 ‘객주’, 최명희의 ‘혼불’ 같은 소설을 예로 든다. ‘혼불’에 등장하는 ‘사운거리다’(작은 소리로 속삭이듯 소리내다), ‘아리잠직’(얌전하며 귀여운 모양새) 등 1200개의 토박이말과 사투리를 뜻풀이한 사전까지 나와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의 언어생활에서 토박이말은 싸구려 대접을 받거나 거반 숨이 넘어가고 있는 지경이다.
▶한글인터넷주소추진총연합회에서 559돌 한글날을 맞아 제1회 ‘토박이말 살려 쓰는 글쓰기 대회’를 열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태어나 자란 토박이면서도, 토박이말이 외래어보다 낯설게 느껴지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는 대회 취지문이 토박이말이 처한 안타까운 사정을 말해준다. 응모작은 초·중등부와 대학·일반부 등을 합해 150여편. 많다 할 수는 없지만 억지 부리지 않고 담담하게 엮어간 우리말 글들이 편안하다.
▶“배움의 길을 떠나왔다가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 뿌리내리지 못한 채 어느 새 바스락거리는 나이가 이마에 따갑다. 거둥에 망아지처럼 어우렁더우렁 살다 보니 헌 나이만 먹은 셈인데 무엇 하나 씩씩이 이룬 것이 없어…”(오용기). “사람들은 산을 자르고 들을 갈라 길을 내고는 그 길로 숨 가쁘게 차를 몹니다. 고라니가 치여 죽고 너구리와 남생이도 깔려죽습니다”(이희순).
▶나라와 나라 사이 벽이 없어진 시대에 외래어나 한자어를 외국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물리치려 한다면 스스로 언어생활의 폭을 좁히는 것이다. 그래도 된장맛이 그렇듯이, 토박이말에는 토박이말로밖에는 나타낼 수 없는 느낌의 세계가 있다. “나는 라틴어나 그리스어·히브리어로는 느낄 수 없는 하나님을 ‘독일의 혀’로 듣고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드린다.” 이 말의 주인 마틴 루터가 라틴어 성경을 독일 토박이말로 옮기면서 독일은 유럽의 가장자리에서 벗어나 중심국가로 떠오르는 첫 발걸음을 내딛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