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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고 더함 2007/12/28
   
 
 
 
  교육, 학술
[말글찻집] 가급적·급기야/최인호

‘가능’은 낱말로 굳어져 쓰이는데, ‘가급’은 홀로 쓰이지 못한다. 가능은 ‘가능한, 가능한 한, 가능성’ 따위로 쓰이지만 ‘가능적’으로는 쓰이지 못하고, 가급은 ‘가급적’(可及的)으로만 쓰이고 ‘가급성’은 쓰이지 않는다.

‘가능한 한’이나 ‘가급적’은 둘 다 ‘될수록·되도록·된다면’으로 바꿔 쓸 수 있다. ‘꼭·반드시’에는 못미치지만 좀 넉넉함을 주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될 수 있다면’이란 뜻을 뭉뚱그린 게 ‘될수록·되도록·된다면’이다.

이처럼 어찌씨로 쓰이는 말에 뜻모를 한자말이 적잖다. 도대체·대관절·가령·가사·필경·종내·응당·항차·상례·급기야 따위가 그렇다. 여기서 몇몇을 빼고는 거의 토박이말로 바뀌어 쓰이는데(종내·필경→끝내, 응당→마땅히, 항차→하물며, 상례→늘), ‘급기야’(及其也) 같은 말은 짜임새가 야릇한 말이면서 좀체 사라지지 않는다.

‘가급적’은 일본식 조어(かきゅうてき·なるべく)로서, 영어(as ~as possible, as~as one can, so far as possible …)를 뒤치면서 만들어 쓰던 것을 우리가 분별 없이 받아 써 버릇된 말로 보인다.

‘급기야’ 역시 쉬운말로 ‘마침내·결국·끝내·드디어’ 정도로 바꿔서 쓸 말이다.

우리말에서, ‘마침내’는 ‘기다리거나 바라지 않는 일’이 일어났을 때 주로 쓰고, ‘드디어’는 ‘기다리고 바라던 일’이 일어났을 때 써야 걸맞은 말로서, 말맛이 꽤 다르다. 영어나 외국어를 대하면서도 문맥에 따라 ‘마침내/드디어’를 구별해 뒤치고 가르칠 일이 아닌가 한다.

△핵실험 등으로 성사가 불투명했던 남북 문학인 모임인 ‘6·15 민족문학인협회’가 마침내 7월29일 금강산에서 결성식을 열기로 합의했다 → ~ 드디어 7월29일 ~.

△북한 당국이 이처럼 많은 조선족을 금강산 관광특구에 투입한 것은 남한 관광객과 접촉하는 북한 주민의 수를 가급적 줄여 사회 불안을 막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 북쪽 당국이 이처럼 많은 조선족을 금강산 관광특구에 고용한 까닭은 남쪽 관광객과 만나는 북쪽 주민 수를 될수록 줄이려는 뜻으로 풀이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수요에 따라 주택담보대출이 자연스럽게 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강제적으로 억제할 뾰족한 방법은 없는 상태”라며 “가급적 시장원리에 맞는 대책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 ~ “될수록 시장원리에 맞는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옛 유고연방에 속했던 나라들이 무엇 때문에 연방 해체 이후 피비린내 나는 종족·종교 분쟁을 겪었고, 급기야는 여러 나라로 쪼개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말로 설명하면 복잡하다 → ~, 마침내 여러 나라로 쪼개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자면 썩 복잡하다.

△공정위까지 동원해 비판 언론을 옥죄더니 급기야 세무조사라는 칼을 또다시 꺼내 들었다 → ~ 마침내 세무조사라는 칼을 다시 뽑았다.

△고건 전 총리가 드디어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선언했군요 → ~ ~ 끝내 ~.

△북한 핵실험 이후 진행되고 있는 일본의 핵무장 논의를 보면 ‘드디어 때가 왔다’는 표현 외에 딱히 설명할 말이 없어 보인다 → ~ ‘마침내 때가 왔다’는 ~.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2006/11/09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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