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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고 더함 2007/12/28
   
 
 
 
  교육, 학술
[말글찻집] 사투리

말에도 계급이 있는가? 계급보다 주류-비주류 구분이 나을 듯하다. 한문-언문, 우리말-외래어, 표준말-사투리, 예삿말-낮은말, 우리말-영어 쪽으로 가면 그 대립이 심각한 까닭이다. 그 중에 ‘표준어-사투리’ 대립은 한쪽 말의 존폐를 돌아보게 한다.

현행 ‘표준어 규정’에는 ‘방언’이란 말만 나온다. ‘방언’은 학자들 쪽에서, ‘사투리’는 일반인들이 많이 쓴다. 사투리를 ‘비표준어’라 싸잡아 일컫기도 한다. 사투리는 달리 ‘시골말·고장말’로 일컫기도 하고, 한자말로˙와어’(訛語) ‘와언’(訛言)이라고 깔아뭉개거나‘토어·토음·토화’라고도 한다.

사투리는 서울 중심 표준말 텃세에 짓눌려 힘을 펴지 못했으며, 그나마 제대로 쓰던 이들은 연로해 타계하거나 날이 갈수록 말투가 뒤섞여 온전히 보전해 쓰는 이를 만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표준말 규정은 한자말이나 외래어는 일부 표기방식을 빼고는 규제영역 밖에 두고 방치하면서, 주로 토박이말만 규제 대상으로 삼아 정한 영역 밖의 말은 버릴 말로 규정해 공적인 말글살이에서 내친다. 본디 표준말 사정이란 뜻과 소리·꼴이 같으면서 ‘어음으로 조금만 차이가 나는 것’을 주된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나 날이 갈수록 소리나 꼴이 아주 다른 말까지 휩쓸려 격하되는 지경에 이른다.

덕분에 표준말은 공용문서, 신문·방송 등 언론, 널리 실용문에 이르기까지 무척 공고한 틀로 자리잡는다. 거기다 맞춤법 등 어문규범의 바탕, 학교문법의 기준이 되고, 문학작품조차 표준어 위주 글이 대부분이다. 표준어 정책의 긍정적인 면은 효과적인 교육, 외국인에게 표준 한국어를 가르치는 방편, 규범언어 성격 등 그 성금이 적잖다. 본디 1930년대에 조선어학회에서 맞춤법을 만들고, 표준말을 정한 큰 목적은 국어사전을 만드는 바탕되는 규범·약속들을 정하고자 함이었다. 그 효과는 일반 언어생활까지 규제하는 성과를 거두는데, 그 뒷배는 광복 이후 교육당국과 언론들이다. 이로써 사투리는 학교·언론·관청에서 두루 추방되고, 써서는 안 되는 금기처럼 배척한 결과 우리 토박이말을 허약하고 가난하게 하는 쪽으로 귀결되었다. 토박이말의 ‘애기집’이 바로 숱한 사투리인 까닭이다.

그동안 사투리는 배우지 못한 이들이 하는 말, 질 낮은 말, 천한 말, 덜된 말, 지방색을 드러내는 촌스런 말, 우스갯소리에서나 쓰는 말, 통일에 걸림돌이 되는 말 …들로 취급받았다. 획일적 교육, 언론 계몽, 교통 발달, 도시화, 핵가족, 서구화 등 사회풍조 또한 이를 돌보지 않게 하는 주된 요소들이겠다.

한편으로, 남북이 나뉜 지 50년이 넘어서면서 우리말은 크게 ‘문화어-표준어’라는 두 가지 ‘중앙 언어’ 체계가 등장했다. 이는 또다른 말의 나뉨이다. 최근 남북에서 공동으로 벌이는 겨레말큰사전 편찬은 다시 말을 하나로 모으는 작업이다. 이에 적용할 새로운 규범이나 규정이 언제·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지난 5월 표준말 위주 국어정책을 걸어 헌법소원을 낸 사건도 있다.(‘탯말두레’ 장재황 등) 그 결정이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 말글 문제가 헌법소원으로 해결될 일은 아닐터이나 사투리를 좀더 높이고 그 가치를 살려가야 한다는 경각심을 일깨우는 효과는 있을 터이다. 사투리는 말의 ‘다양성’보다 ‘바탕’이라는 생각에서 다룰 일인 듯하다. 또한 그 고장에 가서 그 말씨와 색깔, 음식들을 만나지 못한다면 무얼 보고 들을 것인가.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2006/12/21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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