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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고 더함 2007/12/28
   
 
 
 
  교육, 학술
`꼬라지하고는→꼬락서니하고는`이 바른말

또 한해가 갔다. 지난 해 힘들게 산 사람들은 한 해가 빨리 가기를 원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과거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았을 것이다.

작년에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언어 속에도 그 삶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에 텔레비전을 통해 자주 들었던 유행어 하나를 곱씹어보면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돌이켜 보고자 한다.

2006년 말미에 ‘꼬라지하고는’이라는 말이 유행을 했다. 이 말은 주말 연속극 ‘환상의 커플’에서 안나 조(한예슬 분)가 한 말이다.

드라마에서 안나 조는 막대한 재산가이다. 그녀는 주변에 무서운 것이 없는 존재로 말투도 고압적이고 건방지다. 그녀는 온갖 친척의 아부를 받으며 떠받들어져 컸고, 어릴 때부터 살아온 환경도 다르기 때문에 주변에 보통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자신의 시각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시각에서 나온 말이 ‘꼬라지하고는’는 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꼬라지’는 ‘꼴’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꼬락서니’의 방언이다. (비에 젖은 꼬락서니가 가관이다./날림으로 만들어진 뗏목을 타고서 주걱 모양의 노를 휘저어 열심히 물장구를 치는 그 우스꽝스러운 꼬락서니는 미친 놈으로 오해받는 것도 무리가 아닐 만큼 진기한 풍경이었다.≪윤흥길, 완장≫/민 씨는 노인이 언제나 마땅찮았는데 출근길에 불쾌한 꼬락서니를 보게 되니 더욱 참을 수가 없었다.≪황석영, 한 씨 연대기≫)

‘꼬락서니’는 ‘꼴’에 ‘­악서니’가 붙은 말이다. ‘꼴’은 ‘사물의 모양새나 됨됨이.(조각품이 서서히 꼴을 갖추어 간다.), 사물의 모양새나 됨됨이를 낮잡아 이르는 말. (내 꼴이 우습다./그 꼴로 어딜 그렇게 돌아다녔니?/꼴도 보기 싫으니 당장 집에서 나가!/누구 죽는 꼴 보고 싶어서 이 야단이니?), 어떤 형편이나 처지 따위를 낮잡아 이르는 말. (나라 망하는 꼴 보지 않으려고 이민했다)’로 쓰인다.

특히 ‘꼴’은 ‘사물의 모양새나 됨됨이를 낮잡아 이르는 말.’로 많이 쓰여, ‘꼴에 수캐라고 다리 들고 오줌 눈다 (되지 못한 자가 나서서 젠 체하고 수작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처럼 관용구에도 쓰였다.

따라서 ‘꼬라지하고는’ 표현은 ‘꼬락서니하고는(혹은 성깔하고는)’이라고 말하는 것이 표준 어법이다.

이 말은 제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말이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이 말을 하는 연기자 한예슬도 사실은 남에게 일침을 가할 수 있는 도덕성이 있는 캐릭터는 아니다. 그리고 이 말은 상대방에게 행동 시정을 요구하는 요청이나, 명령의 뜻이 담긴 것이 아니라, 멸시의 뜻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일상생활에는 삼가는 것이 좋겠다.

유행어는 아니지만, 지난해 후반기에 많이 부른 노래 ‘땡벌’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자. 이 노래는 유행했다기보다는 독특한 제목에 강하고 반복적인 리듬이 특이해서 많은 사람이 따라 불렀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당신은 못 말리는 땡벌 당신은 날 울리는 땡벌, 혼자서는 이 밤이 너무 너무 길어요, 당신을 사랑해요 땡벌 당신을 좋아해요 땡벌, 밉지만 당신을 너무 너무 사랑해"라는 가사는 몇 번 들으면 저절로 입에서 맴돌고, 리듬 또한 소리만 높이면 따라할 수 있어서 남녀노소가 불렀던 것이다.

그러나 ‘땡벌’은 ‘땅벌’의 방언(땅속에 집을 짓고 사는 벌)이다. 우리말에는 ‘땅-’이 붙는 벌레 이름이 많다. ‘땅강아지, 땅거미, 땅남날개하늘소, 땅벌레, 땅범하늘소, 땅콩물방개, 땅풍뎅이’이다. 식물 이름에도 ‘땅귀개, 땅꽈리, 땅나리, 땅두릅, 땅딸기, 땅비수리, 땅비싸리, 땅빈대, 땅채숭아, 땅콩’ 등 ‘땅-’이 결합되었다.

지난해 유행어의 중심에는 여성이 있었다. 한예슬에 이어, 개그우맨 김미려, 영화배우 김혜수가 그렇다. 개그우맨 김미려는 "김기사, 운전해 어서"하면서 인기를 얻었다. 김미려 또한 한예슬과 비슷한 공주병 스타일이지만, 정작 귀한 공주는 아니었다.

즉 김미려는 우아한 폼으로 김기사에게 위세를 떨지만 정작 실세인 회장님에게는 주목받지 못하는 여자다. 올해 영화 ‘타짜’에서 김혜수의 난데없는 이대 학벌 들추기도 결국은 자신의 약점을 한 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무기라고 들고 나온 것이다.

이러한 유행어는 결국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자신의 참모습으로 보이려는 것보다 포장된 의식으로 남에게 우위에 서려는 잠재의식이 발로된 것이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고 시민의식도 성숙해졌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직도 사회 일각에는 건전하지 못한 의식이 남아 있다는 것을 꼬집기 위해 나온 말들이었을 것이다.

2006년이 남긴 유행어는 이밖에도 많다. 유행어라는 것이 매스컴이 만들지 않고 주변 친구들과 서로 자주 한 말도 유행어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한 해를 마감하면서, 혹은 한 해를 시작하면서 독자들도 저마다 무슨 말을 많이 하고 살았는지, 자신의 어록을 점검해 보는 것도 좋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2007/01/03 국정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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