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은 <대단한 유혹>이라는 영화를 소개하면서 '순박한 섬마을의 어눌한 사기극'이라고 제목을 단 신문이 있었다.
<종벌레 아저씨 이야기>라는 책을 소개하는 또 다른 신문의 문학기사는 '그의 그림들은 어눌하다.
아름다움을 흉내내지도,뭔가 감춰둔 척 뻐기지도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어느 책의 서문엔 '어눌한 글 쓰기'라는 표현이 있는가 하면,추사의 그림을 두고 '세한도.그 어눌함에 밴 정신성'이라며 감탄하는 글도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 쓰인 '어눌'들의 뜻은 '어설프다'거나 '세련되지 않다'거나 '소박하다'는 것이지 정작 '어눌'은 아니다.
'어눌(語訥)하다'의 뜻이 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하고 떠듬거린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 더듬을 눌(訥)',또는 '말 적을 눌'은 생긴 그대로 말[言]이 안으로 들어가서[內] 나오지 않는다는 뜻. 그래서 '눌변(訥辯)'은 '더듬거리는 서툰 말솜씨'라는 뜻이고,'눌언(訥言)'은 '더듬거리는 말'을 가리킬 뿐,어디에도 소박하거나 어설프거나 세련되지 않음을 가리키는 뜻은 없다.
그러니 '어눌한 생각'이나 '어눌한 행동'은 모두 있지도 않은 일을 있다고 우기는 셈이 된다.
'…/오직 나는 그 정반대로 비록 어눌한 언어이지만/눈이 맑은 자와 가난한 자와 열악하게 사는/당대의 밑바닥 풀뿌리 민중의…대변인이 되고 싶다는 것 뿐.' 지난주에 세상을 떠난 이선관의 시 <나의 글은> 가운데 한 부분이다.
장애를 앓아 몸이 불편하고 말까지 어눌한 그였지만 '어눌'을 부려쓰는 모양으로 봐서는 되레 누구보다 '달변'인 시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