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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고 더함 2007/12/28
   
 
 
 
  교육, 학술
[이진원 기자의 바른말 광] `물러설래야`에 얽힌 고민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해 말을 아끼던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주에 드디어 입을 열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과 "(일본의 선제공격론에 대해)물러설래야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라는 두 마디였다.

그러자 '국가원수가 안 보인다'던 어느 신문은 당장 <북한엔 말없고 일본에 퍼붓는 盧대통령>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북한에도 퍼부으라는 말인지,아니면 일본에는 퍼붓지 말라는 말인지…. 속마음이야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이 신문이야 원래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치면,눈길을 끄는 재미있는 현상 하나가 남는다. 우리 신문들이 대통령의 말을 전하면서 양쪽으로 팽팽히 나뉘었던 것.

동아·세계·조선일보와 경향·한겨레신문은 노 대통령이 "물러서려야 물러설 수 없다"고 했다는 기사를 썼고 국민·한국일보와 서울신문,그리고 부산일보는 "물러설래야 물러설 수 없다"고 했다고 썼다. 노 대통령은 분명히 어느 한쪽으로만 말을 했을 터인데도 우리 신문들이 '물러서려야-물러설래야'로 나뉜 속사정은,이렇다.

흔히 '죽을래야 먹고 죽을 것도 없다'고 하지만 이 말은 잘못됐다. '죽으려야 먹고 죽을 것도 없다'로 써야 제대로 된 것. '죽을래야'는 '죽을라고 해야'가 줄어든 꼴인데 이 가운데 '죽을라고'는 '죽으려고'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을라고 해야'는 '죽으려고 해야'가 옳다. 그리고 이 말을 줄여 쓰면 '죽으려야'가 되는 것이다. '뗄래야'(→떼려야)나 '볼래야'(→보려야)도 마찬가지다.

그런 까닭에,"노 대통령이 '물러설래야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고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했음에도 우리 신문들 절반은 노 대통령의 말을 표준어 규정에 맞게 고쳐 실었던 것이다. 사실 고친 신문이나 고치지 않은 신문이나 모두 지면에 고민이 녹아 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엔 어느 쪽이 옳다고 선뜻 손을 들어주기가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대통령 말도 말한 그대로 신문에 싣지 않을 수 있다는 점. 이건 큰 힘이 되기도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신문을 편파의 함정에 빠뜨리는 독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그 때문에 독자들은 비판의식을 갖고 신문을 봐야 하는데,그러고 보면 갈수록 독자 노릇 어려워지는 것도 분명하다.

2006/07/18 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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