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어연구원(지금은 '국립국어원')이 수백 명의 인력과 100억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은 이제 대세를 잡았다. 옛것을 고집하던 교과서조차 띄어쓰기와 사이시옷 표기를 이르면 오는 2009학년도부터 표준국어대사전(다음부터는 '표준사전')에 맞추고 게다가 그 교과서를 국립국어원이 감수하기로 했으니,국립국어원과 표준사전의 기세가 하늘을 찌른다. 이쯤 되면 우리말과 글에 관한 한 절대권력이라 할 만하다.
사정이 이러니 표준사전에서 보이는 잘못들이 어찌 작게만 보이겠는가. 권한이 크면 책임도 커야 하는 법. 국립국어원과 표준사전이 비난 받는 가장 큰 까닭은 질정이 없기 때문이다. 추세라며 새로운 흐름을 따라가다가도 옛것을 고집하느라 갈팡질팡하는 게 바로 그렇다. 게다가 새로운 풀이마저 얼토당토않아 보이는 것들이 있고 단순한 오자도 많으니 국정감사에서까지 지적을 받는 것이다.
예를 들어,'목발'을 찾아보면 이렇게 돼 있다. '목다리를 속되게 이르는 말.' 이 풀이에 따르면 목발은 쓰지 않아야 할 저속한 말이고 제대로 쓰려면 '목다리'라고 해야 한다. 실제도 그런가. 글쎄…아마 꽤 많은 독자들께서는 '목다리'라는 말을 지금 처음 보실 것이다. 그러니,이 말을 사전에 실을 때 사정했던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가 못내 궁금하다.
또 '놀잇감'은 '장난감의 잘못'이라고 풀이돼 있다. 그러니 '해수욕장에서는 모래나 조개껍데기가 가장 좋은 아이들 놀잇감이다'에서 '놀잇감'은 표준사전에 따르면 '장난감'으로 고쳐야 한다. '모래,조개껍데기'가 장난감이라…. 아이들은 별로 호응을 하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끝말잇기 같은 말놀이에서는 말 자체가 놀잇감인데 이것도 장난감이라 해야 할까.
그런가 하면 종이 이외의 재질로 된 것은 거의 보지 못했음에도 '녹권(錄券)'을 '공신의 훈공(勳功)을 새긴,쇠로 만든 패'로 풀이하고 있다. 흔히 신문에 실리던 '공신녹권' 사진을 보면 대개 두루마리나 책 형태였는데 '쇠'로 만든 '패'라면 여기엔 또 어떤 뒷이야기가 있는지….
현장에서 말을 다루는 사람들마저 뜻풀이를 생소하거나 어색하게 여긴다면,아마도 국립국어원과 표준사전이 더 잘못한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