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박이말은 우리 겨레가 이땅에 살아오면서 스스로 만들어낸 마음의 집이다. 우리 몸에는 겨레의 유전 정보가 들어 있듯이 토박이말에는 마음 정보가 들어 있다. 유전정보와 달리 마음 정보는 흔들리는 세상에 맡겨두면 단박에 망가진다. 지난 백 년 동안 우리는 무섭게 흔들리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토박이말을 지키고 가꾸고 가르치지 못했다. 흔들리는 세상을 타고 일본말이 밀려와 짓밟고 미국말이 들어와 휘저어 뒤죽박죽이 되었다. 수백 수천 년을 살아오며 갈고 닦아 마련한 겨레의 마음 정보를 온통 망가뜨린 셈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네 마음, 우리의 느낌과 생각과 뜻과 얼은 토박이말과 함께 뒤죽박죽인 것이다.
보기로 토박이말 ‘무섭다’와 ‘두렵다’를 들어보자. 우리 가운데 누가 이들이 어떻게 다른지를 알며 다르게 가려 쓰는가? 〈표준국어대사전〉조차 ‘무섭다’를 “어떤 대상에 대하여 두려운 느낌이 있고 마음이 불안하다.” ‘두렵다’를 “어떤 대상을 무서워하여 마음이 불안하다.” 이렇게 풀이했다. ‘무섭다’는 두려운 것이라 하고, ‘두렵다’는 무서운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왜 두 가지 낱말을 만들어 썼겠는가? ‘무섭다’나 ‘두렵다’나 모두 느낌을 드러내는 낱말이다. 그러나 ‘무섭다’는 느낌을 일으키는 무엇을 잘 알 적에 쓰고, ‘두렵다’는 느낌을 일으키는 무엇을 잘 모를 적에 쓴다. 호랑이는 무섭고, 하느님은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