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황희 정승이 퇴정하여 집으로 돌아와 보니 어린 아들이 먹통에 값진 먹을 진하게 풀어놓고 한 마당같이 넓고 희디흰 백지장 우에다 글씨를 익히고 있었다.
《아니, 너 이 지필묵은 어디서 난거냐?》
갓 학당에 다니기 시작한 아들이 얼마 전부터 지필목을 사내라고 졸랐으니 미처 사주지 못했댔는데 오늘 이렇게 값진 백지장에 값진 먹물통에다 붓을 희한히 갖추어 놓고 글씨를 쓰고 있으니 적이 놀라마지않은 황정승이였던 것이다.
《이건 이웃집에서 공으로 준 것이래요.》
아들은 자랑하며 말했다.
《공으로?》
《그러찮구요. 그집 애가 아버지보고 말해서 이렇게 우정 사다주던데요 뭐.》
그 말을 들은 황정승은 얼른 품에서 돈냥을 꺼내 아들에게 주며 말했다.
《얘야, 이 돈을 가져다 주어라!》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두 돈은 무슨 돈잉얘요. 우정 사다 준 것인데 그 값을 어떻게 갖다 줘요?》
아들은 전혀 듣지 않았다.
이에 황정승은 곧 부인을 찾았다.
《여보, 이 애가 남의 물건을 공으로 가졌으니 부인께서 어서 그 값을 물어주구 오구려.》
그러니깐 부인도, 《아니, 대감님도 물건이 클세나 말이지 몇 푼 안되는 걸 가지고 공연히 값을 물어준다면 서로의 체면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번만은 그래도 둘러둡시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황정승은 엄하게 말했다.
《여보 부인, 그래 이제 갓 서당에 보낸 애에게 남의 것을 공으로 가지는 재미부터 붙이게 해서야 되겠소? 이것은 부모 된 이로서 절대 삼가야 할 일이요. 그리고 또, 그 집에서는 무엇 때문에 아직 지필묵을 갖추지 못한 숱한 애들을 두고 유독 우리 애에게만 돈을 팔아 사주었겠소? 그래 내가 나라 정승직에 있지 않고 백성으로 지낸다면 알은 체나 하겠소? 이런 물건을 받아 두어 내 장차 입을 열 일에도 부득불 입을 봉하게 될지도 모르니 그 후환을 어찌 다 예측할 수 있겠소? 그러니, 부인은 더 말을 말고 어서 애를 데리고 가서 값을 물어주고 오도록 하오.》
황정승의 도리 분명한 말에 부인은 두 말 없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이웃집에 가서 그 지필묵값을 치러주었다고 한다.
동시에 이로부터 《꼿꼿하기는 황정승이라.》하는 속담이 생겨났다고 한다.
(廷邊, 李龍得)
하루는 황희 정승이 퇴정하여 집으로 돌아와 보니 어린 아들이 먹통에 값진 먹을 진하게 풀어놓고 한 마당같이 넓고 희디흰 백지장 우에다 글씨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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