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평생교육 ＊ 우리말 배움터

옛날 옛날 서울에 영감님은 영의정대감이고, 아들들은 판서대감이고, 집은 후루룩 날라갈 것같이 잘 살았는디, 그 대감마나님이 종들도 많고 뭣 하나 기룰 것(그리워할 것, 부적할 것)이 없는데도, 큰대감님이 국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아 마나님이 어디가고 없더란 말이여. 하 참, 대감마나님의 함부로 밖을 안 나가는 법인디, 갑자기 밖에서 "새우젓 사려!"하고 웨치고 다니는 장사꾼소리가 나자, 아 갑자기 하던 일을 밀쳐 놓고 그냥 나가 버렸다는 것이여. 참 기가 막힐 일이지. 그리고 아직껏 안 들어온다는 것이여. "그것 참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양반의 집에 이럴 수가 있는가?"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하고, 식구들이 찾아도 알 수가 없어. 그래 대감님이 상감님한테, 나이가 많아서 국정(國政)을 더 볼 수 없다고 벼슬길을 물러났어. 종자(從者)하나 어린 것을 데리고 조선팔도(조선팔도, 전국)을 찾아 나섰어. `마나님이 어디 가서 나라 안에 살기는 살 것이니 찾아당기다 보면 만나겠지."하고 나섰어.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고 그래 안 가본 데 없이다 당겨보아도 영 못 만나겠어. 그러다가 전라도 강진9강진땅까지 왔더란 말이여. 그 시장거리를 가서 보니 즈그마나님이 아 글쎄, 시장바닥 한 구석에서 술도 팔고, 밥도 팔고, 손님도 치고 그런 일을 하고 있어. 옳다, 찾긴 찾았다만 저녁에 초근히 (차근차근하게) 따져보자 하고, 모르 쇠하고(모른 척하고) 하룻밤 묶어가는 손님이라고 하고 자리를 잡았어. 조금 있다가 무슨 우락부락한 놈이 오더니 즈그 각씨보고,
"오늘 저녁은 내가 당번이라 못 들어오니깨 손님 잘 대접하고 혼자 있게나."
하고 나가. 서방이 고을 아전으로 당기고 있어.
"옳다! 잘 됐다. 내가 각씨한테 물어볼 수 있겠구나."
하고 밤이 짚기를 (깊기를) 지다렸다가, 인제 변장한 것을 다 벗어 던지고 여자방을 들어갔어. 아, 여자야 웬 남자가 아닌밤중에 문을 따고 들어오니 오죽 놀랬겠어. 그러다 본깨 그 들어온 사람이 바로 대감영감이여. 서울서 자식 낳고 살던 높고 높은 영감이여. 기절초풍(깜짝놀라 정신이 나가다)할 일이지.
"걱정말라."
고, 내가 뭐 잡으러 온 것도 아니라고. 도대체 어찌된 이야긴지 들어나 볼라고 조선팔도를 찾아 나섰다고 한깨, 여자가,
"대단히 잘못했습니다."
고 빌어,
"도대체 어찌된 일이냐?"
고 물은개. 나도 모르겠다는 것이여.
"방에서 낮에 일은개, 밖에서 "새우젓사려!"하는 장사꾼소리를 들으니 몇 십년 정들어 살던 소리같이 아무 정신 없이 그 소리만 들려서 홀려가지고 그냥 버선발로 따라나섰노라."
고 그래.
"새우젓장사 소리가 그리 듣기 좋더냐?"
"그 소리를 듣고 정신이 가물가물해지고, 내가 저 사람을 따라 가야지, 따라가야지 하는 생각만 나서 나왔습니다.!"
고 그래.
"아하, 내가 당신을 만나면 무슨 내력(내력)을 알 줄 알고 십년을 찾아다녔는디, 오늘사 제유(겨우) 만났는디, 말을 들어보니 그것도 허사라, 영 모를 일이요그려. 여기서 이렇게 천하게 살 것이 아닐 다 벗어버리고 어서 서울로 올라갑시다."
그랬더니, 여자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듬서,
"인제 나는 못 갑니다. 아무리 천해도 여기가 좋습니다!"
고 그래.
뭐가 좋냐고 해도 지금이 좋아 죽겠다는 거여.
아 글쎄, 영의정마나님이 시장통의 밥장사가 당하냐는 말이여.
그래도 좋다는 거여. 골백번 생각해도 알 수가 없는 일이여.
그래서 자식생각도 안 나냐고 그러개, 이 지금 서방 없이는 못 산다는 거여. 탁! 기가 막히지, 아무리 서울로 가서 모든 것을 묻어줄 텐개(용서할 테니) 서울로 올라가자고 해도 안 간대! 지금 서방은 고작 아전인디 영의정보다 낫다는 거지.
그래 대감이 할 수가 없어서 그길로 내쳐 절로 들어가 중이 되었어. 이것이 어찌된 일인고 싶어서, 불도(불도)를 닦으면 그 내력을 알아 볼까 하고 중이 돼서 인제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가고 세월이 갔어.
10년이 되던 날 아침이라. 그래도 각씨가 그렇게 천한 생활이 좋다는 내력을 모르겠어.
아하, 십년이 되어도 왜 그런지를 모르는가-하고 저, 동틀녘에 동산하늘을 쳐다 보다가, 아! 알았어. 그 내력을 알았어!
`십년 공부 하루 아침`이란 말 있지! 그거여. 그 말이 여기서 나왔어.
눈 앞에 전생(前生)일이 환하게 열리는디 보닝개, 그 지금 중이된 사람, 전에 영의정대감이 전생에도 중이었어. 중인디, 이를 길렀어. 중은 살생을 안 하지 않아? 그러니 피를 뜯어먹은 이라도 안 죽여. 중은 살생(殺生)을 안 하지 않아? 그러니 피를 뜯어먹은 이라도 안 죽여, 그러니 이를 기르는 거지 보리알만하게 크더니 이제는 콩알만하고 , 거짓말 보태서 아주까리만해졌어. 몸에서 자꾸 또르르 굴러서 떨어져 내려. 그러니 이놈의 이가 귀찬지. 그러다가 하루는 거기 동냥을 가다가 들판을 지나다보니깨, 누런 황소 한 마리가 들판에서 죽어가고 있어. 그래,
"이야, 이제 너하고도 작별이다. 저 황소한테 가 살다가 소도 죽으면 너도 끝내거라."
하고 황소한테 넘겨주고 가 버렸어. 이는 소 신세를 졌지.
그러다가 인제 돌고 돌아서(輪回) 이 세상으로 태어난 것이, 그때 대사 중은 지금 영의정대감 자기가 되고, 이는 각씨가 되었어. 그리고 그 황소가 새우젓장사가 됐어. 그러니 전생의 신세를 갚느라고 이가 여자가 되어 처음에는 영의정하고 살고, 인제 때가 다 차닝개 새우젓장사한테 가서 전생에 신세진 것을 갚는 것이다.
이렇게 전생의 제반사(제반사: 온갖일)가 환-히 다 보여.
"아하, 일이 그렇게 된 거러구나!"
하고 그때까지 못 풀던 수술께기를 확 풀었다는 것이다. 네 그래 여기서 `십년 공부 하루 아침"이란 말이 생겼지.